[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맨 땅에 서면 불안감 엄습하는 도시인
"어떻게 시골에서 살 수 있어?"
3년 전 이 곳 이스트 밸리에 집을 지으면서 동네 어른들에게 조촐하게 음식을 대접했다. 일종의 전입 신고였는데 그 자리에서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오랜 세월 농사에 이골이 났을 법도 했고 시골 생활에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터인데 할머니는 농촌에서 삶이 충분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여든 살이 훨씬 넘어 보이고 오랜 세월 힘든 농사 일 등으로 몸이 적잖게 상했는지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할머니에게서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시골에서 도시로 떠나는 흐름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반대로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귀농 혹은 귀촌의 형태로 시골을 향하는 도시의 중장년층이 최근 들어 늘고 있지만 정작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 대부분은 이를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시골 살이라는 게 육체적으로는 꽤나 힘든 노동의 연속이다. 도시에서 공사장을 전전하는 막노동과 닮은 측면도 있다. 이런 점만 보면 '죽을 때까지 공사판'이나 다름 없는 시골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하는 곳일 게다.
그러나 노동의 대상과 목표를 비교하면 도시에서 막노동과 시골에서 농사는 극과 극처럼 서로 다르다. 먹고 살기 위해 몸을 쓰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지만 농사는 생명을 다루고 도시에서 노동은 기계나 콘크리트 등을 대하는 일이다. 이 둘은 또 흥미롭게도 흙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적으로 다르다. 시골에서 흙은 생명을 키워내는 터전이다. 반대로 도시에서 흙은 덮거나 감추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집이나 공장 사무실이 들어선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주차장이며 길까지 흙이 노출된 공간을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다시피 한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은 "포장된 도로에서 벗어나 맨 땅을 밟고 서면 불안감이 엄습한다"며 내게 "어떻게 시골에서 살 수 있느냐"고 종종 말한다. 하기야 가로수 조차 시멘트 블록 사이를 힘겹게 뚫고 나온 모양새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게 도시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흙이 지니고 있는 '모성 본질'을 이해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삶을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한다. 흙은 생명을 배태하고 성장시키는 그래서 사람으로 치면 자궁이요 곧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싱그러운 연두 빛이 지배하는 이 계절 신록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많다.
식물들이 펼치는 향연은 말 그대로 눈부시기까지 하다. 푸르름을 만들어 내는 작물과 나무들은 그 아름다움은 논외로 치고 자연계의 생존 질서라는 관점 즉 다소 냉정하게 바라본다 해도 먹이사슬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이다.
너무 빤한 얘기지만 식물이 없으면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의 동물들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또 그 식물들을 키워내는 게 바로 흙이다.
올 들어 본격적인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얼마 전부터 생명의 신비 혹은 경외감 같은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지난해 겨울 심어 놓았던 마늘이 겨우내 살아있는 아무 조짐도 보이지 않더니 어느 날 갑자기 땅 밖으로 잎사귀를 틔워 놓았다.
감자며 상추 케일 등 내 손으로 심고 씨를 뿌린 작물들도 잇따라 한두 주 만에 땅 위로 여린 몸체를 드러냈는데 그게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돈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어떤 소중한 가치가 느껴졌다.
평소 고되고 돈도 안 된다는 이유로 농사 일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동네 할아버지 한 분도 "채소 같은 게 자라는 걸 보면 언제 봐도 좋기는 혀"라고 말하는 걸 보면 자라는 식물들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 넣는 건 상당 부분이 모성 혹은 부성 본능인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도 마치 내 새끼들처럼 그런 본능을 자극한다.
흙과 그 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삶에 크나큰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시골 생활이 해볼만한 것이라면 아마도 이런 활력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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