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기…폴란드 (타트라 & 크라코우)
광산서 맛본 '소금과 예술의 만남'
가는 길은 멀다. 부다페스트에서 크라코우까지 그저 달리기만 한다면 제 아무리 여행의 고수라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모두에게 산뜻하고도 신선한 기쁨을 선사한 중간 기착지가 바로 슬로바키아의 타트라였다. 생소한 지명이다. 하지만 '동유럽의 알프스 산맥'이란 별칭이라면 조금은 그곳의 아름다움이 그려지지 않을까.
과연 하룻밤을 쉬어간 타트라는 알프스 산맥이 가졌을 법한 광활한 자연미를 간직한 곳이었다. 온 우주가 잠든 듯한 타트라의 고요한 밤은 집을 떠난 먼 곳에서 바삐 몸을 움직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포근했던 밤을 보내고 자욱한 안개가 덮인 타트라에서 맞는 아침 또한 평화롭기 이를 데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수많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느끼며 삼림욕을 즐기는 시간은 마치 이 여행이 '관광'을 위함이 아닌 '휴양'이 목적이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였다.
폴란드하면 바르샤바가 제일 먼저 생각나지만 크라코우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곳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역사의 단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아우슈비츠에 들어서기 전 현지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플래시가 터지는 사진을 찍지 말 것 그리고 이곳이 갖고 있는 의미를 기억하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지 말 것. 하지만 수용소의 차가운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그 누구도 웃을 수가 없었다.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을 만큼 수북하게 쌓인 당시 피해자들의 옷가지 신발 장신구 시계 등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들 피해자들이 썼던 손 편지 그들에 대한 생체 실험과 잔혹했던 수용 역사를 기록해놓은 사진들을 보면 분노가 치밀기도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기도 한다.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할 유대인들이 스러져갔을 가스실과 화장터를 등지고 나올 때 그 걸음은 무겁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곳 한 켠에 그들을 기억하는 장미꽃 한 송이가 놓여있는 것을 보면서 또한 앞선 세대의 시대적 과오를 잊지 않고 매년 그 곳으로 수학여행을 온다는 독일 학생들의 무리를 보며 작은 마음의 위로와 희망을 갖게 된 것도 모두의 공통된 체험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13세기부터 채굴이 시작된 곳으로 320미터가 넘는 깊이까지 개발이 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소금광산이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탐험 여행을 떠나듯 나무 계단을 둘러 둘러 광산 속으로 내려가니 어둡지만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하나까지 모두 투광 되는 소금으로 이뤄진 암벽과 바닥이 눈 앞에 펼쳐졌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소금광산이 있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광산 노동자들이 채굴 뒤 남은 공간을 이용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소금광산과 얽힌 전설이나 역사를 빼어난 솜씨로 깎고 빚어 만든 조각품들은 특히나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하일라이트는 광산 노동자들이 직접 만들고 신앙생활을 했던 광산 속 성당. 소금으로 만든 제대와 촛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성화 폴란드 출신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의 성상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며 거룩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시간대가 잘 맞아 감상할 수 있었던 지하 성당의 조명쇼는 얼핏 평범할 듯 했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이 왜 연간 8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유네스코 유적으로도 등재될 만큼 의미 있는 명소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기회였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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