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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편지 한줄에는 '내'가 있다

손으로 쓴 편지는 마음을 울린다.

기억과 추억 사이에 다리를 놓고 여운마저 감사하게 한다.

1년 전, LA한인타운 동일장 대표 김성운(77)씨는 사진 속 편지 한 통을 받았다. 30년 만에 돌아온 밥값과 함께였다. 하얀색 정사각형 편지지엔 흘려 쓴 필체로 1981년 친구들과 고기를 먹다 돈이 없어 순간적으로 '도망'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학생이었다는 글쓴이는 지금 적어도 쉰은 넘었을 것이다. 당시 김씨는 돌려받은 50달러에 500달러를 보태 일본 지진 돕기 성금을 냈다. 귀한 돈을 귀한 일에 쓰겠다는 뜻이었다.

1년이 넘었지만 그 감동은 식지 않았다. 21일 전화를 통해 만난 김씨의 아내 인화(73) 씨는 '편지'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글쓴이와) 아직도 못 만났다"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신문에 사연이 소개되며 만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단다. "밥값은 50달러가 아니에요. 30년간 잊지 않고 우리를 생각해 준 마음이죠. 그 마음은 평생 간직할 거에요."

편지를 보내고 받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간격만큼이 설렘이고 기다림이다.

쓰다가 찢고 버린 무수한 파지는 쑥스럽고 간절한 사랑이고, 진솔하고 애절한 미안함이다.

그렇게… 편지는 즉각적이지 않아서 내가 그대로 담긴다.

문자가 가벼워졌다.

디지털 시대답게 시간.감정.수고는 줄이고 속도와 간편함에 승부수를 띄웠다. 손가락으로 터치스크린 몇 번 두드리면 끝. 무조건 짧게 줄인다. 종이에 꾹꾹 담아 묻던 안부는 '뭐해?' 언제 올까 두근두근하던 기다림은 '씹어?' 글씨에 감정이 묻어날까 싶어 여러 번 고쳐쓰던 그 고민은 온갖 이모티콘이 대신한다. 간편함은 글자가 담는 의미의 용량을 현저하게 낮췄다.

스마트폰 문화가 만든 신조어를 보면 이 속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메시지를 보낸 뒤 바로 답이 없으면 전화로 확인해 채근하는 퀵백세대(Quick-back generation) '1초도 참을 수 없는' 현대인의 조급함을 뜻하는 초미세 지루함(Micro boredom) 트위터.카카오톡.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 미디어와 한 줄짜리 메시지에 중독된 현상을 코카인의 일종인 크랙(Crack)에 빗댄 크랙베리(Crackberry)까지 가벼운 일회성 메시지를 찬양한다. '띠링' 울리는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가벼운 만큼 양은 늘었다. 글로벌 메시징 회사인 에이시전(Acision)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휴대전화 이용자는 하루평균 107통의 메시지를 보낸다. 10대 청소년의 경우 지난 2009년보다 10개 늘어난 60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집계됐다. 10분만 서비스를 멈춰도 난리가 난다는 카카오톡이 하루 평균 처리하는 메시지 수는 총 13억 건. 가입자(4200만 명) 한 명당 하루 평균 83건의 메시지를 작성하는 셈이다.

수치만 보면 인간관계 및 소통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과거 글을 통해 공고히 다져졌던 친구.가족.동료관계가 시공을 초월한 '과잉연결(hyper-connected)' 환경을 받아들이면서 개인 간의 친밀도가 얕아졌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성인 10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하루에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30분 미만~1시간 가량이라 답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메시지 등을 보내는 시간(59분)보다 적다. 데이트에 나가서도 채팅으로 대화하고 축하.감사.위로 같은 섬세한 감정을 문자 한 줄로 대신하는 세태. 얼굴도 모르는 디지털 대중과는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살 부딪치는 사람에겐 '진정으로 같이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거기에 시종일관 삑삑대는 문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도 생겼다. 온라인 리서치 두잇서베이에 따르면 카카오톡 사용자 2117명 중 83%는 메시지가 없어도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그 중 일부는 이명이 들리고 빨리 자신의 상황을 업데이트 해야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SNS스트레스 증후군과 건강 설문조사에선 짜증 등 신경쇠약(41%) 뒷목.어깨 결림(18%) 우울감(16%) 수면장애(13%)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메시지)은 기존 인터넷보다 약 2배가량 중독성이 강하다.

간편함은 나쁘지 않다. 가벼워진 문자도 그렇다. 다만 가끔 흘러간 노래처럼 손으로 쓴 편지가 그리워질 뿐이다. 진심을 담고 기다림을 배워 감사함으로 받았던 그땐 구겨진 편지지 한쪽 귀퉁이 점 하나에도 의미를 찾았었다. 급하지 않았고 마음이 통했다. 만약 가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이등병의 카톡'이었다면 같은 느낌일까.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은 필요하다. 손 편지 한 줄은 감동이다.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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