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의 노인대학 식사 봉사를 시작으로 자원봉사를 해오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어르신들을 만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의 병을 많이 고쳤기 때문입니다.
횡성읍에서도 큰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 30분이나 더 들어가는 둔내면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며 바쁘게 일하며 자식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던 저는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사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생활자체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남편의 어눌해진 말과 행동은 낯설기만 했고, 생전 나들이 한번 못가고 일만 하며 살아온 남편이 불쌍해 수없이 울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성장하고 몇 년만 더 일하면 노후까지 끄떡없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횡성노인복지센터로부터 도시락 배달봉사를 맡아 달라는 청을 받고 배달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불편한 남편을 혼자 둘 수 없어 옆자리에 태우고 함께 도시락 반찬을 배달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반찬이 맛없다며 바꿔달라거나 타박하는 유별난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이젠 적응이 되어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것이 서럽고 힘들어 그 짜증을 우리에게 부리며 외롭다고 호소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내장으로 눈이 점점 희미해지고 산 속에서 혼자 텔레비젼만 친구 삼아 사시는 게 오죽할까 싶은 마음에 측은하기도 하고 나도 늙어 저리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자 할머니 투정도 어리광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의 도움 없이 어렵게 살아가며 서로 위하고 보살피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느끼고 또 서로 의지하며 그렇게 살자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보건소 방문 봉사와 횡성복지관 복지지도자 그리고 횡성노인복지센터 방문 돌봄 활동을 하면서 그때 인연을 맺었던 어르신들을 만나면 우리 엄마 아버지를 만난 듯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이젠 상심하지 않습니다.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곳이 있고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둔내 산골짜기를 누비며 어르신들의 기(氣)를 받으러 다닙니다. 저의 기(氣)도 나누어 드리지만 기쁜 마음으로 다니니 오히려 제가 어르신들 덕분에 기를 받고 행복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