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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속 영웅들에 생명 불어 넣었죠

Los Angeles

2012.05.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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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저스' 컨셉트 아티스트 앤디 박
남자는 누구나 가슴 속에 소년을 품고 산다. 나이와 상관없다. 갑갑한 셔츠와 목을 죄는 넥타이 차림이라도 그들의 가슴 속 소년은 꿈을 꾸고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만화 속 영웅이 돼 우주를 누빈다.

앤디 박. 그는 그 소년의 순수와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다. 그가 일하는 곳은 만화책 속 수퍼히어로들을 영화로 만들어내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 그곳에서 앤디 박은 비주얼 디벨롭먼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컨셉트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가장 최근작은 '어벤저스(Avengers)'다. 원작 만화 속 캐릭터와 스토리들을 실사 영화의 비주얼로 옮겨 내기 위한 가장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평생을 마블 코믹스의 팬으로 살아온 그에게 '어벤저스' 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저 꿈만 같은 일이었다.

"2년 전 마블에서 '어벤저스'를 위한 팀을 꾸린다고 연락을 해왔을 때는 그야말로 '오 마이 갓'이었죠. 아이언 맨 같은 '어벤저스' 속 주인공들은 오래전부터 제 마음속 영웅이었으니까요. 처음 영화관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는데 어릴적 꼬마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어요. 프리미어 행사 때 레드카펫도 밟고 배우들도 모두 만났는데 제가 더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했죠."

앤디 박을 비롯한 마블의 아티스트들이 없었다면 '어벤저스'의 흥행은 불가능했다. 아니 어쩌면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집중적으로 작업한 부분은 호크 아이와 닉 퓨리 등 쉴드(S.H.I.E.L.D) 요원들의 캐릭터였다.

"컨셉트 아티스트들마다 특출난 분야가 한두 개씩 있는데 저는 캐릭터와 의상 등에 강한 편입니다. 이번에 호크 아이와 쉴드 요원들을 작업하면서도 고심을 많이 했어요. 원작에 있는 상징적 느낌들을 가져오면서도 쉴드 조직이 갖고 있는 비밀스러운 암살자의 느낌 군대 조직 같은 이미지도 많이 살려봤죠."

할리우드 대작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한 것은 '어벤저스'가 처음이지만 업계에 뛰어든 것은 벌써 20여 년이 다 돼 간다. 처음 시작도 만화였다. UCLA 2학년 시절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만화를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만화 잡지를 펴놓고 공부하듯 연구하고 따라 그렸죠. 고등학생 때는 만화 잡지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기도 했어요. 그 무렵부터 혼자 조금씩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었죠."

번듯하게 배운 적도 없는 만화였지만 타고난 실력은 감출 수가 없었다. 펜으로 혼자 끼적이며 그린 포트폴리오를 들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이나 받아보겠단 생각으로 참석했던 만화 컨벤션에서 앤디 박은 단숨에 업계 거장의 눈에 띄어 발탁이 됐다. 신나게 그림을 그렸다. 이미 꿈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옵션이 없는 삶은 싫었어요. 만화가로서의 삶이 정말 재미있고 행복했지만 만화밖에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 만화가로 살아가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패서디나 아트센터에 입학했다. 거기서 기본기를 다시 다졌다. 드로잉 페인팅 칼라 이론까지 배움의 장을 넓혔다. 많이 보고 많이 배웠다.

"그림에 참고할만한 실생활의 이미지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의자 하나를 그린다 해도 현실에 있는 물건에 기반해서 그리는 게 중요하니까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참고삼아 볼만한 이미지들을 찾는 게 쉽진 않았어요. 서점에서 사진집을 사다가 보고 그리고 연습한 후 다시 리턴하는 게 일상이었죠."

그런데 졸업을 얼마 앞두고 또다시 그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다가왔다. 비디오 게임으로 초대박을 치고 있던 '툼 레이더'를 만화책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다시 과감히 학교를 떠났다. 어차피 학위에 연연할 생각은 없었다. 그에겐 '어떤 학교를 나왔냐'보다 '어떤 작품을 그렸느냐'가 훨씬 중요했다. 선택은 옳았다. '툼 레이더'는 연일 최고 판매부수를 찍으며 만화업계를 휩쓸었다. '언캐니 엑스멘' '수퍼맨' 까지 작업을 이어가며 앤디 박의 이름도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꾼 것은 2004년 무렵이었다. 비디오게임 업계를 중심으로 컨셉트 아트의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앤디 박도 과감히 그 새로운 흐름에 몸을 실었다. 밑그림부터 채색해 완성하는 작업까지 직접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의욕이 컸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화와 컨셉트 아트는 접근 방법부터가 달랐다.

"만화는 제가 그려 완성하면 그걸로 끝이었어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죠. 그런데 컨셉트 아트는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비전을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옮겨 주는 일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한 달 내내 고심해서 그려간 컨셉트가 선택되지 않는 일도 있었죠. 처음엔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점차 그게 컨셉트 아티스트의 역할이자 좋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다 마블로 옮겨 간게 2010년이다. 앤디 박의 빼어난 실력과 만화비디오게임을 업계를 오가며 쌓아 온 다양한 경험의 가치가 필요했던 마블 측에서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어벤저스'를 성공리에 끝낸 앤디 박은 이제 '아이언 맨 3'와 '토르 2'를 작업 중이다. 그는 여전히 어릴 적 영웅이던 캐릭터들 속에 둘러 쌓여 사는 것이 흥분되고 기쁘기만 하단다.

"이름도 어느정도 알리고 경력도 꽤 쌓아 왔지만 전 언제나 팬이자 학생으로 남고 싶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보고 끝없이 영감을 받는 팬 쉬지않고 노력하고 연습하며 실력을 쌓는 학생 말이죠."

그는 아직도 "매일같이 꿈이 점점 커진다"고 말한다. 소년 같은 마음이다. 그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언젠가 제 스토리 제 캐릭터를 가지고 저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꼭 감독이 돼야 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게 만화책이건 그래픽 소설이건 나만의 것을 창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 아닐까요."

글=이경민 기자·사진=신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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