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 16년 만에 총 17개 매장 열고 직원 400여 명 30% 재료비 상승 무릅쓰고 유기농 순두부로 승부
미 동부와 서부, 대표적인 한인 상권에 가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북창동순두부(BCD Tofu House). 서부 대도시 LA를 중심으로 뉴욕 맨해튼, 뉴저지 포트리. 그리고 최근 베이사이드에까지 간판을 내걸었다. 1996년 LA에 1호점을 낸 북창동순두부는 순두부 하나로 꾸준히 성장, 지난 5월 말 20번째 매장인 베이사이드점을 내기에 이르렀다.
북창동순두부 이희숙 대표는 “변함없이 찾아준 고객들과 자신의 회사처럼 일해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며 “순두부가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한식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인의 입맛 사로잡는다=현재 동·서부에 16개, 서울에 1개 등 총 17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북창동순두부는 16년 LA 한인타운에 평범한 순두부전문점으로 문을 열었다.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돌솥밥’을 선보인 것. 당시 LA에서 1인용 돌솥에 밥을 직접 지어주는 곳은 북창동순두부가 처음이자 유일했다고 한다. ‘밥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북창동순두부는 처음부터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가지 토핑을 더해 다양한 맛의 피자가 나오는 것처럼 순두부에도 고객들이 좋아하는 ‘맛’을 추가해 나갔다. 식당 영업 종료시간은 10시. 문을 닫을 때쯤, 자신의 업소 영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왔다는 고객들이 종종 있었다.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이 많은 점을 고려해 24시간 영업매장을 만들었다. “주차가 힘들었다”는 말에 다음엔 주차장이 더 큰 곳에 지점을 냈다.
이희숙 대표는 “우리가 다음에 진출할 장소는 고객들이 정해줬다. 처음엔 한인들의 ‘우리 동네엔 왜 안 생기냐’는 말을 귀담아 듣고, 지점을 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엔 타민족들이 ‘우리 동네에도 지점을 만들어 달라’고 의견을 내더라. 북창동순두부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장소와 직원이 중요=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진출 지역을 결정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같은 이름으로 20번째 매장을 내기까지 왜 시행착오가 없었을까. 이 대표는 요식업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라고 강조했다. 가장 좋은 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장소를 기다리지 못하고 확장하다 보면 비즈니스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기다려서 놓치는 것도 있지만, 기다리지 못한 것이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식당이 처음 장소를 잘못 정하면 이름과 위치를 알리느라 힘을 많이 쏟아야 한다는 것. 대신 북창동순두부는 그 힘을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쏟았다.
이 대표는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고, 이때 저력이 없으면 무너지기 쉽다”면서 “다음 기회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장소에 자리잡아 고객들이 일단 식당에 발을 들여놨다면 그 다음은 직원들의 몫이다. 우수한 서비스만이 그 고객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식당에서 맛은 기본이다. 북창동순두부는 정기적으로 직원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한 달에 한번씩 지점별로 인터넷에 올라온 고객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마련했다. 총주방장은 각 지점을 돌며 ‘북창동순두부의 맛’이 변함없도록 퀄리티 컨트롤을 담당한다.
이 대표는 “나는 평범하지만 한가지 잘하는 것은 나보다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일단 일을 믿고 맡기면 내가 할 일은 두 가지 뿐인데, 잘하면 칭찬을, 잘 못하면 방법을 보강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유기농 순두부 도입=16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북창동순두부의 성장은 계단처럼 이뤄졌다. 3~4년 바쁘게 뛰다 보면 어떤 계기들이 생겼고, 그때마다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한국진출, 김치회사 하선정 인수가 모두 그렇게 이뤄졌다. 최근엔 지난 2009년 전 지점의 순두부를 유기농으로 바꾼 것이 도약의 계기였다.
모두가 ‘웰빙’을 키워드로 삼던 때, 유기농 순두부에 매료됐다. 재료비가 30% 이상 오르는 일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절대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북창동수두부는 실행에 옮겼다. 당시 한인 요식업계는 불경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내가 좀 무식하잖아요.” 불경기에 30%의 재료비 상승을 어떻게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이 대표는 “처음엔 걱정도 됐지만 결국 그 30%를 고객들이 메워줬다”며 “앞으로도 한식과 한국의 음식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