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16마일 코스15시간만에 올라 1년 반동안 등반 훈련덕 '전원 완주' 조물주 창조 앞에 겸손해진 등반팀
성삼성당(주임신부 배기현)의 산악회(회장 이용준ㆍ53)가 지난 메모리얼 연휴에 그랜드 캐년 등반을 했다. 21명 일행에 기자도 동행했다. 최연소자는 김매튜(13살) 최고령자는 80세의 박병호씨. 코스는 사우스 림의 사우스 케밥 트레일(South Kaibab)로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갔다가 브라이트 앤젤 트레일(Bright Angel)로 올라오는 총 16마일의 힘든 트레일로 프로들은 10시간 걸리는데 우리팀은 완주하는데 15시간 걸렸다. 1년에 500만 관광객 중에 9만 명이 아래로 등반하고 이중 3000명 이상이 탈진 등 등반사고를 내는 코스다. '전원 완주'에 프라이드를 가질만 했다.
# 출발= 5월26일(토) 오전 6시. '잘 다녀오라'는 수녀님 환송을 받으며 성당을 출발. 12인승 밴 2대와 짐 실은 픽업 트럭 한 대로 이동했다. 아침과 점심은 차 안에서 해결했고 세사람이 교대로 페달을 밟아 그랜드 캐년 마더 캠핑 그라운드(mother camping ground)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LA보다 춥고 바람이 불었다. 텐트 친 다음 예영애 종신부제의 주도하에 말씀 나누기를 했다."당신이 모든 나뭇잎 돌 틈에 감춰 둔 교훈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하는 '인디언의 기도'를 마음 속에 새기며 자연 속에서 하느님 숨결을 발견하길 기도했다. 파카를 입었는데도 밤에 추웠다. 누군가가 '화씨 28도'라 알려 주었다.
# 트레일= 1년 넘게 준비한 오늘이라 감회가 깊은지 모두 진지해졌다. 낙오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반 말로만 듣던 그랜드 캐년에 내려간다는 설레임 반으로 새벽 3시 30분 눈이 떠졌다. 텐트 밖은 캄캄하고 추웠다. "산에서는 세수할 필요가 없다"는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일어나자 마자 등산화를 신고 무릎 보안대를 차고 트랙킹 폴(등산용 지팡이)를 양손에 거머 쥐었다. 백팩에는 오늘 하루종일 먹을 트레일 식량을 챙겨 넣었다. 물 땅콩 말린 과일 초컬릿 오이 등등. 트레일로 가는 첫 버스를 타고 입구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30분. 수천길 협곡은 어두움에 싸였고 인적은 없었다. 머리에 두른 헤드라이트를 켰다. 유일하게 발길을 밝혀줄 빛이다. 연습 때처럼 회장을 선두로 또 부회장을 맨뒤로 서열을 갖추면서 천천히 '감격의 역사적인 등반' 길에 올랐다. "절대로 빨리 걷지 말라"는 회장의 지시를 새기면서 그랜드 캐년의 품안으로 서서히 내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묘한 감회 속에서 모두 침묵 속에 발을 옮겼다.
우리가 첫 등반자일까? 그러나 얼마 지나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 푸르스름한 덩어리들이 보였다. 노새의 똥이었다. 콜로라도 강변에 있는 로지에 필요한 용품들을 나르는 노새 일행이 앞서 내려간 것이다.
1시간 정도 갔을 때 "저기 해 뜬다"고 소리쳐 모두 멈춰섰다. 5시20분이었다. 이제껏 봐왔던 그런 해돋이가 아니었다. 눈부신 하얀 광선 그 자체가 아래서 위로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여기 태양은 다른 것 같다"는 말에 공감했다. 해가 떠오르면서 사진으로만 봤던 총천연색의 수억년 된 그랜드 캐년이 아득한 낭떠러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하며 모두 말을 잊고 서 있는데 "자 모두 헤드라이트 끄고 전진!"하는 회장의 신호가 떨어졌다.
걸어감에 따라 층층색색 계곡 암벽의 색들이 햇빛에 따라 검붉고 푸르스름하고 때로는 연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신비스런 세계에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좋으신 하느님 자연을 만드신..."성가가 절로 입가에 맴돌았다.
아침 6시가 가까왔을 때 첫번째 화장실이 나타났다. 목적지인 콜로라도 강까지는 7마일. 회장은 4시간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행동식(움직이면서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5분도 채 안돼 '출발'신호를 내렸다. 걸으면서 말린 과일과 초컬릿으로 허기를 달랬다.
2시간 정도 내려가자 아득한 협곡 아래에 뭔가 반짝였다. 콜로라도 강줄기였다. 그 옛날 인디언들도 생명수를 찾아 내려 오다가 이 지점쯤에서 우리처럼 '저기 강이다'고 희망의 소리를 쳤겠지? 그러나 강은 2시간 더 내려가서야 다달을 수 있었다. 긴 다리를 건너 강가에 이르니 다른 트레일로 내려온 몇몇 등반객들이 있었다. 아침 8시30분. 예정대로 4시간 만에 도착. 땀과 흙으로 범벅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감격스럽게 콜로라도 강가에 발을 담갔다. 차가왔다. "언제 또 콜로라도 강물에 발담가 볼 수 있겠냐"며 모두 웃었다. 맞는 말이다.
아침 요기와 휴식을 한 다음 9시 반에 브라이트 앤젤 트레일로 올랐다. 9마일로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다. 가파른 경사의 트레일이 이제부터는 계속 위로 올라간다. 그늘도 없다. 사우스 림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로 악명(?)이 높은 이유다.
1년 반동안 닦은 체력만 믿고 인내로 가야 한다. "중간 지점인 인디언 가든에서 점심 먹습니다." 30분 정도 올라 간 지점에 식수터에서 3병의 물병을 꽉꽉 채웠다. 인디언 가든까지 3시간 동안 물이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 버텨야 한다. 인근에 팬텀 로지 캠핑 그라운드가 있다. 대부분 이곳에서 하루 숙박 다음에 올라가는데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답게 당일치기를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경사가 심해지자 숨이 차올랐다. 태양은 이젠 더 이상 신비롭지 않았다. 뜨겁고 협곡 암벽은 그 열을 받아 그대로 우리에게 되갚아 주고 있었다. 협곡의 기온은 화씨 10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하나씩 벗은 옷으로 백팩은 더 무겁다. '지옥 산행'이란 단어가 떠오르면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울고 싶을 때 그늘이 우거진 목적지에 다달았다. 살았다. 때는 12시 반. 모두 허기와 더위로 지쳤다. 식수터에는 외국인 젊은 등반객 몇명이 물로 얼굴을 식히면서 농담하고 있었다. 웃을 기운조차 없었다. 서둘러 에너지를 충전했다. 컵라면을 얼큰하게 먹은 다음 과일 말린 것도 초컬릿도 열심히 먹었다. 그늘을 찾아 두 다리를 뻗고 앉았지만 마음은 무겁다. 앞으로 남은 5마일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란다. 유일한 위안은 1.5 마일마다 식수와 화장실이 있다는 것. 등반사고가 많아 설치해 놓았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 걱정됐다. 얼마나 힘들길래.
오후 1시반 마지막 고지를 향한 '마의 산행'이 시작됐다. 더 가팔라진 트레일. 총천연색의 암벽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거의 살인적이었다. 더 이상 그랜드 캐년은 없었다. 올라가야 산다는 '생존의 등반'만 남았다.바위가 드리워 준 좁은 그늘이 유일한 쉼터. 무릎이 더 아파오고 허리도 뻣뻣해졌다. 부은 발가락은 돌모서리에 부딪칠 때마다 찔러댄다. 왜 따라왔나 후회가 스물거린다.
일행의 발걸음이 점점 느리고 무거워지자 회장은 30분 간격으로 쉬던 것을 15분 나중엔 5분 마다 바위그늘만 나타나면 쉬게 했다. 거의 혼수상태에서 기계적으로 발을 옮기는데 "저기 인포메이션 센터가 보인다"는 회장의 말에 눈을 드니 정말 저 꼭대기에 건물이 아련히 서 있다. 사람도 조그맣게 보였다. 이 때 누군가 "우리 힘냅시다. 후딱 올라가서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해야지요"했다. 마지막 1시간 고비를 '시원한 맥주 한잔'만 생각하며 버텼다.
아. 드디어 바위동굴을 지나 센터에 올라왔다. 때는 저녁 7시. 그랜드 캐년의 해는 지고 있었다. 아래 협곡을 내려다 본 순간 울컥했다. 저 길을 해냈다니. 모두들 눈가가 촉촉해졌다. 캠프촌으로 가는 버스에서 말들이 없었다. 15시간 동안 우리의 세포 속속히 스며든 수억년의 그랜드 캐년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