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삶이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 내 이웃 그리고 낯선 이들까지도 함께 녹여내며 '관계'를 만들어내는 삶의 안 뜨락이다. 인간의 역사가 이야기와 더불어 시작됐다고 할 만큼 사람들은 이야기를 사랑하고 떨쳐낼 수 없는 그 매력을 언제나 가까이에 두고 있다. 현대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화 세계이다. 숨가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을 쫒아다니고 현실 가능한 일에 몰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그리워하고 허구가 양념처럼 어우러진 '이야기'는 여전히 인간의 '벗'이다. 손을 뻗으면 많은 것에 손이 닿을 수 있는 세상인데도 꿈에 대한 열망은 더 강렬해진다.
무언가 동경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본질이 현실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한한 인생의 갈증이 꿈을 동경하게 되고 그 꿈은 이야기를 만든다. 꿈은 '긍정적인 착각'이라고 했던가. 이루어질 수 없다해도 품을 수 있음은 행복하다.
정보화시대의 사람들에겐 더이상 정보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는 한계가 왔다. 복고를 그리워하고 달리는 기차와도 같은 삶에서 잠시 쉼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는 상업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계속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상품을 구매하게 한다. 그래서 드디어 스토리는 상품 가치를 표현하는 '의미'가 되고 있다. 그것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라 부른다.
*디지털 안에 아날로그 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란 브랜드(상품)와 관련된 흥미로운 인물이나 배경 등을 소비자가 관심을 갖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단지 상품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해 상업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기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몰입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고 감성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휴먼스토리로 다가가며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호소하고 상품 속에 담긴 이야기의 의미를 함께 나눈다. 온라인 시대는 더 이상 일방적인 기업의 홍보성 광고에 현혹되어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타인의 이야기 경험 공감 등이 상품을 구매하는데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집어드는 악세서리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걸었던 스토리가 있는 무언가를 더 선호한다.
*스토리텔링이 지배하는 라이프 스타일
개성있는 소비 문화를 만들어내는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배한다. 디즈니랜드 베네통 에비앙 생수 할리 데이비슨 코카콜라…. 이 모든 것이 꿈과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그 꿈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 것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꿈꾸는 것을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면 그들에게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정보화 시대가 지나면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가슴으로 상품을 사는 시대가 오고 매력적이고 차별화된 스토리는 이제 모든 문화 콘텐츠에 적용되고 있다.
*디즈니의 꿈이 녹아든 맥도널드
자영업을 하는 신씨는 작년 추석 무렵 맥도널드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가 유리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휘엉청 밝은 달 아래 토끼 두 마리가 방아를 찧는 모습. 이건 한국 전래동화에서나 볼 법한 그림인데…. 신씨는 그 포스터가 한국적 정서를 담은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상징인 맥도널드는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며 소수 민족의 가슴을 두드린다.
맥도널드는 한인 사회의 추석 명절을 맞아 한인 자녀들을 위해 한국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행사도 열어 큰 호응을 받았다. 이렇듯 맥도널드의 모든 요소들은 브랜드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다. 실내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매장 내 놀이터 그리고 캐릭터 판매로까지 이어진다. 노랑과 빨강이라는 대표적인 컬러를 중심으로 제작된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들은 캐릭터들과 아동복까지 만들어낸다.
이러한 마케팅을 위해 디즈니 출신의 무대 연출가와 작곡가를 기용하여 고유한 브랜드 스토리를 창출하고 있다. 먹거리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따뜻하게 만들어내는 브랜드 연상 작용이 아이들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명품은 걸어다니지 않는다
마릴린 먼로. 그녀는 우리 곁에 없지만 섹시한 미소의 하얀 쉬폰 원피스는 지금도 나비처럼 날아든다.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보여준 단 한 장의 컷은 그녀의 대표적 상징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고 있다면 통풍구를 사뿐히 밟고 있는 하얀 구두를 주목하라. 마릴린 먼로가 각선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이태리에서 공수한 ‘페레가모’ 구두이다. 그 한 장면이 오늘날 페레가모의 명품 브랜드 지위를 50년 동안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한 점의 짜릿한 스토리는 보는 이의 연상 속에 오래도록 살아 남는다. 그래서 명품은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고 기억 속의 이미지가 그것을 찾게 한다.
*따뜻한 감성이 머무는 곳 - 노스트롬( Nordstrom )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그 곁에서 노인이 된 소년을 기억한다. 미국의 대표적 백화점인 노스트롬에는 쉼터와 같은 그루터기 감성이 살아있다. 의류 매장에서 한 고객이 옷을 입어보다가 비행기 표를 깜빡 놓고 간다. 그것을 발견한 직원은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찾아가서 고객에게 비행기 표를 미소로 건네 준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젊은 여자. 한 남자가 우산을 받쳐 준다. 언뜻 보면 엉큼한 작업남 같지만, 그 남자는 바로 노스트롬 직원이다.
실제로 노스트롬 직원들은 고객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달 200달러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한다. 광고의 감성이 필드에서 감동의 가치로 살아난다.
*판타지로 터져오르는 독특한 탄산 방울
카콜라의 짧은 광고는 우리를 한 편의 영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 젊은 청년이 자판기를 누른다. 동전이 들어가자마자 그 안에서 콜라 팩토리 판타지가 펼쳐진다. 콜라 한 방울의 짜릿함이 신비한 모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하게 만들어진 콜라가 자판기로 툭 떨어진다. 젊은 청년은 밝은 미소로 콜라를 마신다.
콜라를 마실 때의 독특한 느낌을 꿈과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 광고는 대표적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코카콜라가 아시아 버전을 만들기 위해 600:1의 오디션을 통과한 한국인(황준하: 26세)을 발탁했다는 뒷이야기는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전해준다.
*스토리텔링, 역사에 생명력으로 흐르다
조선의 비극적 역사인 단종의 죽음. 그 슬픈 ‘단종 애사’ 스토리가 조선 왕릉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오르게 했다. 한국을 방문한 유네스코 현지 실사단이 ‘장릉’에 얽힌 단종의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를 들은 후 감동했고, 비로소 조선 왕릉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혜실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실제 장릉은 외진 장소에 위치하고 초라할 정도로 소박하나, 오히려 이러한 점이 애틋한 전설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고 설명했다. 문화 유산에 얽힌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높은 가치를 만들어내게 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라는 책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에롤로그
“굉장히 아름다운 것을 보면 반드시 그래요. 그토록 아름다운 곳을 ‘가로수 길’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좋지 않아요. ‘기쁨의 하얀 길’이라면 어떨까요. 멋진 이름이죠?” 추억의 동화 빨강머리 앤. 주인공 앤은 상상력의 이름들을 오늘도 생기로 불어 넣는다. 살아있는 오늘은 진정성과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원한다. 가슴을 울리며 공감을 이끌어 내고, 그 감동의 에너지로 하루가 달려가야 한다. 희망의 스토리는 절실하다. 길의 모퉁이에서 오늘도 마음의 지갑을 열어 꿈을 산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속에 ‘이야기’가 있으면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