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난 겨울을 먹는다…"평양냉면은 목으로 꿀꺽 삼키는 맛"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와서 구경을 하는데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별별 것 보았네
맛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좋다.” -노래 냉면 中-
얇디얇은 국수 한 젓가락에 무더위가 말끔히 가신다. 별다른 반찬도 없건만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는 면발마다 술술~ 맛있는 소리만 가득하다. 물기 가득 머금은 투명한 실가닥 새콤달콤한 국물 산뜻한 맛. 코끝 찡한 겨자에 성난 하루를 잊고 묵직한 육수에 위로받으며 여름을 맞는다. 냉면(冷麵) 시즌이다.
냉면은 매우 특이한 음식이다. 이 세상에 차가운 국수 요리는 거의 없다. 게다가 원래는 겨울 별미다. 추운 날에 차가운 국수라…. 시인 백석은 냉면 맛을 이렇게 정의했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냉면파는 가위로 나눈다. '질겨도 너무 질긴' 쫄깃파와 이로 뚝뚝 잘라먹는 메밀파다.
섭씨 130~150도의 뜨거운 열로 뽑아낸 감자.고구마 전분면은 끈끈한 점성이 높아 가위로 자르지 않고는 목 넘김이 불편하다. "아줌마 여기 잘라 주세요!"
하지만 메밀로 반죽한 정통 평양냉면은 젓가락에 힘만 줘도 쉽게 잘린다. 메밀파는 '목구멍으로 먹는다'라고 이야기한다. 국수를 입에 한가득 넣고 목구멍으로 밀어넣는 순간 메밀면이 목 안에서 툭툭 끊어지는 맛이 냉면의 매력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이북에서 오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가위를 거부한다. "나라 잘린 것도 억울한데 냉면까지 잘라?"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깔깔한 메밀은 반죽이 어렵다. 그래서 전분을 섞어 쓰기도 한다. 메밀파가 인정하는 평양냉면은 메밀 함유량이 80% 이상 되는 것인데 국수의 색이 흰색에 가깝다. 흔히 소바와 같이 흑갈색을 띄면 메밀이 넉넉히 들어갔다고 여기는데 속메밀만 쓰는 냉면은 색이 연하다. 메밀은 꺼끌꺼끌한 식감이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젊은 층은 정통 평양냉면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 어렵다.
여기서 잠깐. 냉면과 엇비슷한 쫄면의 탄생비화를 보자. 쫄면은 1970년대 초 광신제면이라는 공장에서 냉면 면발을 뽑던 사출기 구멍을 잘못 맞추는 실수로 탄생했다. 평소보다 차진 면발을 버리기 아까워 이웃 분식점에 공짜로 제공한 것이 시초다.
"한오라기 코구멍에 나오는 것 손으로 빼냈네
또 나온다 줄줄줄 또 빼낸다 아직도 빼낸다
맛좋은 냉면이 여기있오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좋다."
오늘 점심 메뉴는 냉면이다. 뜨거운 여름 겨울을 먹고 싶다.
소문난 타운 냉면 전문점 5곳
◇ 강서면옥
심심한 평양냉면을 맛 볼 수 있다. 흰 메밀과 까만 메밀, 전분을 섞어 직접 뽑은 면발이 특징. 한국에서부터 50여 년의 전통의 갖고 있다.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 맛과 뚝뚝 끊어지는 냉면이 균형을 이룬다. 육수의 베이스는 양지머리. 하루가 지난 냉면 국물(육수+동치미)은 무조건 버린다. 편육 대신 돼지고기 삼겹살을 올리는 이북스타일 특냉면이 독특하다.
☞ 제인 김 사장's tip
식초와 겨자, 냉면김치를 잘 섞어 먹는다. 삼삼한 열무김치가 냉면의 맛을 더욱 살린다.
▶ 전화: (213) 382-1717, 6가와 웨스트모어랜드
◇ 유천
거무튀튀한 칡냉면을 고수하는 집. 14년째, 같은 재료로 매콤한 칡냉면을 만들고 있다. 육수는 사골과 양지를 2시간30분 동안 푹 고아 이틀 정도 숙성시키고 칡·전분·밀가루를 적당량 섞어 만든 면발을 삶는다. 양념의 비법은 진한 육수와 태양초 고춧가루. 칡 본래의 쌉쌀한 맛과 독자적인 양념이 만나 매콤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식욕을 돋구는 맛이다.
☞ 조원제 사장's tip
냉면의 맛은 육수(5), 면(5), 양념(+1)이 좌우한다. 처음부터 식초나 겨자를 넣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육수 따로, 면발 따로 맛본다. 칡냉면의 향과 맛이 독특하다.
▶ 전화: (213) 382-3815, 올림픽과 세라노
◇ 마당621
'우래옥' 전설의 레시피가 이어지고 있다. 생닭·양지·방심 부위만을 푹 고아낸 것이 특징. 별다른 채소나 재료 없이 순수한 고기국물을 우려낸다. 메밀과 약간의 전분으로 반죽한 면발은 입으로 끊어 먹는 것이 정수. 직접 담근 동치미와 고명에 들어간 냉면 김치가 시원하다. 평양냉면 정통 맛이라는 평이 많다.
☞ 이동구 셰프's tip
그릇에 담겨져 나온 대로 맛본다. 육수의 깨끗함과 동치미의 시원함이 식초, 겨자 없이도 느껴진다. 가위로 면을 자르지 않는다.
▶ 전화: (213) 384-2244, 6가와 웨스턴
◇ 칠보면옥
직접 뽑은 고구마 전분 100% 면발은 쫄깃쫄깃함이 살아있다. 쇠고기, 한약재 등 12가지 재료를 푹 고아낸 육수와 손 반죽한 면이 특징. 칼칼한 고춧가루 양념이 어우러져 함흥냉면만의 매콤새콤한 맛을 돋운다. 비린내를 없앤 육수가 개운하다. 메밀 넣은 막국수, 쫄면과 비슷한 쟁반냉면 등 종류가 다양하다.
☞ 낸시 이 매니저's tip
따뜻한 기운의 겨자는 찬 냉면과 찰떡궁합. 가위로 2~3번 자른 냉면에 겨자를 꼭 넣는다. 먼저, 계란을 먹는다. 부드러움과 매콤함이 어우러진다.
▶ 전화: (213) 387-9292, 6가와 킹슬리
◇ 오장동냉면
매일 손 반죽한 메밀·전분 면발을 뽑는다. 취향에 맞게 면을 고를 수 있어 평양과 함흥냉면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육수는 양지·감초·양배추 등 15가지 재료를 푹 삶아 영상 1℃에서 1주일동안 숙성시킨다. 홍어회와 12가지 재료를 넣은 비밀의 양념이 특징. 어머니의 손맛을 지킨 20년의 노하우가 한결같은 맛을 자랑한다.
☞ 이명은 사장's tip
먼저, 삶은 계란 노른자를 쪼개 비빔냉면에 비빈다. 고소함이 배가 된다. 무김치를 함께 먹는다. 물냉면은 식초나 겨자를 뿌리기 전, 본 맛을 음미한다.
▶ 전화: (213) 365-0097, 3가와 아드모어
냉면 인기' 빙수·수박·삼계탕도 이겼다
물냉면.비빔냉면.칡냉면.회냉면.새끼미냉면…. 냉면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냉면 가닥을 하나하나 풀어본다.
◆냉면's History
땅이 척박한 한반도 북부지방에선 메밀.감자 등으로 면을 뽑아 동치미나 육수에 말아 먹었다. 동국세시기(1849년)나 규곤요람(1896) 등 고서에 나타난 냉면은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배추김치.과일.돼지고기를 얹은 요리'다. 크게 육수에 말아먹는 평양냉면과 가자미.홍어회 등을 넣어 매운 비빔장에 섞어 먹는 함흥냉면으로 나뉜다. 특히 담백한 맛으로 정평이 난 평양냉면은 온반.숭어국.녹두지짐과 함께 평양을 대표하는 4대 요리에 꼽히고 있다. 6.25전쟁 전후 널리 퍼져 사시사철 즐기는 요리가 됐다.
◆별별냉면
냉면이라 해서 실가닥처럼 얇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꼬들꼬들한 중국면과 냉라멘 냉파스타도 모두 냉면의 일종. 면 요리가 발달한 중국의 간반몐(乾拌麵)은 꼬들꼬들하게 익힌 가는 면에 화조(산초의 일종)를 더한 땅콩소스.고추기름.오이.파 등을 넣고 비벼먹는다. 땅콩의 텁텁한 맛이 진하게 올라온다. 간반몐의 일본식 냉면인 히야시추카(冷やし中華)는 겨자와 오이 차슈(일본식 돼지고기 수육) 달걀지단 등을 올려 함께 비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빔냉면보다 조금 더 짭조름하고 달콤한 맛이라 생맥주와 잘 어울린다. 버미셀리라는 가느다란 쌀국수로 비빈 베트남식 냉면 '분차(Bun-Cha)'는 각종 채소.돼지고기 목살구이와 함께 차가운 피시소스에 찍어먹는 하노이 전통음식. 야들야들한 쌀국수와 짭조름한 돼지고기 목살구이 차고 새콤한 소스의 조화가 특이하다.
◆냉면리서치
지난 2008년 한국에서 직장인 8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냉면(55.2%)이 여름에 가장 선호하는 음식으로 조사됐다. 냉면에 이어 빙수(10.7%) 수박(7.4%) 삼계탕(7.3%) 등이 순위에 올랐으나 냉면의 아성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냉면의 인기는 타인종에게도 똑같이 나타났다. 작년 10월 서울시가 페이스북.홈페이지 등을 통해 실시한 '서울의 먹거리 탑10'에서 냉면이 7위에 올랐다. 흔히 가벼운 맛 때문에 다이어트 식품으로 오인되는 냉면은 나트륨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열무냉면 800g에 들어있는 나트륨은 3152mg 같은 중량의 물냉면에는 2618mg의 나트륨이 함유돼 있다. 참고로 나트륨 섭취 권고량은 2000mg 한국 1인당 소금 섭취량은 일일 평균 4878mg이다.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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