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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살림살이란?

New York

2012.07.1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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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전공이 국어이다 보니까 이야기 속에 재미있는 단어가 나오면 지나치는 법이 없다.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론을 하게 된다. 이런 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이러한 직업병을 좋아한다. 직업병은 직업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어떤 직업병이 있는가? 좋은 직업병인가 아니면 지겨운 직업병인가?

몇 분의 선생님과 식사를 하는데, 이야기 도중 ‘살림살이’라는 말이 나왔다. 살림살이의 단어 구조나 뜻에 대하여 모두 관심을 보였다.

‘살리다’와 ‘살림’이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 다양한 의견도 등장하였다. 나도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단어였던 터라 궁금함이 커져 갔다. 왜 살림살이라고 했을까?

우리는 ‘살림을 차렸다’라는 말도 한다. 보통 결혼을 하거나 동거를 하는 경우에 하는 표현이다. ‘살림’을 장만하는 것은 새로운 삶을 위한 것이다. 아마도 살림을 차린다는 의미는 새로운 삶을 살려고 준비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렇듯 살림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살림살이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문득 ‘모두를 살리는 살이’가 ‘살림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을 위한 물건들이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살림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힘이 되고, 가족에게 힘이 되는 것이 살림살이일 것이다.

그런데 내 주변의 살림살이들을 바라보면서 많은 것들이 살림살이가 아니라 ‘죽은 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죽어 있는’ 물건으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로 이사를 갈 때 살림살이와 ‘죽은 살이’를 구별하게 된다. ‘죽은 살이’는 쓰레기가 되어 버리게 된다. 어떤 물건은 지난 번 이사 올 때부터 이번에 이사 갈 때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괜히 이리저리 치이는 물건이 되었던 것이고, 집안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내 삶에 진정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옷을 사고, 가재도구를 사고, 가구들을 산다. 예쁘다고 사고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산다. 싸다고 하나 더 사고, 모자랄까봐 하나 더 산다. 하지만 그것은 다 나의 집착일 수 있다.

집안에 놓인 물건들을 보면서 저것이 나를 살리는 물건인지, 나를 매어 놓는 물건인지 생각해 본다. ‘살림살이’가 살아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내게 덜 필요한 살림도 다른 이에게는 중요한 살림이 될 수 있다. 죽은 살림에 혼을 불어넣고 생기를 돌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누어 쓰고 다시 쓰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무조건 죽은 물건이라고 버리는 것도 살림살이에 대한 옳은 태도는 아닌 것이다. 남 주자니 아깝다고 한쪽에 처박아 놓는 것은 내 집착을 쌓아놓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구입하지 않을 것들은 다 ‘죽은 살이’일 수 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본다. 없어지면 다시 장만해야 할 것들인지 생각해 본다.

집안 가득 살림살이마다 담겨있는 나의 집착을 본다. 살림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조상들의 지혜를 가슴이 담고 아침을 시작한다. 집안 살림을 좀 가볍게 만들어야겠다. 내 집착의 무게를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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