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어린이 후원 성금 모금 위해 30여일간 서울서 부산까지 도보 횡단 국토 종단위해 방송 4개 ALL STOP
이홍렬은 참 작다. 키도 작고 눈도 작고 입도 작다. 하지만 마음 씀씀이는 정 반대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도 그들에게 선뜻 가진 것을 내놓는 배포도 또 다른 선행을 소망하는 꿈의 크기도 크고 넓고 깊다. 세상이 이홍렬을 '작은 거인'이라 부르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가 지난달 LA를 찾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국토종단을 하고 내친김에 아프리카까지 방문했다가 한 달여 간 휴식차 들른 방문길이다. 내일 모레 환갑인 나이에 무슨 생각으로 그 먼 거리를 걸었으며 목숨걸고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냐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이홍렬에게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해봐야 할 일들을 적어 놓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일이었다. 국토 종단은 그 중에서도 1순위였던 이홍렬의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걸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잖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생각이 절절하게 드는 거예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 '하자' 싶었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일단 가족이 걱정이었다.
"국토 종단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했어요. 하고 있던 방송 4개를 다 그만뒀죠. 그래도 지금 이 나이에 하지 못하면 영영 못할 것 같단 생각에 과감히 다 손에서 놓았어요. 부인도 '그래 그러고 싶을 때가 있어'하며 응원해 주더라고요."
하지만 그 긴 길이 자기만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25년 넘게 인연을 맺어 온 어린이 재단과 손을 잡고 성금을 모아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겠다는 숨은 뜻이 있었다. 그 크고 고귀한 뜻이 30여일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홍렬의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줬던 힘의 근원이었다.
"단 하루도 혼자 걸었던 날이 없어요.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옆에서 으쌰으쌰 해주시는 분들 덕에 매번 온 몸에 전율이 일더라고요. 특히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로 넘어가던 날은 수많은 분들이 꽃 한송이씩 들고 길가에 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며 맞아주시는 데 벅찬 감동에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지요."
국토 종단을 통해 모금하려던 목표액은 1억원이었다. 하지만 부산을 출발해 대구에 입성했을때 벌써 1억원을 넘어섰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3억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홍렬은 내친 김에 그 성금과 함께 준비한 자전거 200여대를 기부하러 수단까지 걸음을 옮겼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모든게 그렇게 이어졌다. 거짓말처럼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의 이끌림처럼. 24시간 고생고생해 지구상 최오지라는 남수단까지 갔는데도 고생이란 생각 한 번 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감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뭔데 이런 일을 하고 있지?'란 생각을 했어요.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어느 새 그런 큰 일들을 해내고 있더라고요. 나눔이란게 그렇더군요.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막 휩쓸려요. 물꼬만 터 주면 주변 사람들도 듬뿍듬뿍 함께 나눠 주시고요."
그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알아서 조용히 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남이 알도록' 선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하나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생색낸다 하셔도 좋고 유난 떤다 하셔도 좋아요. 그만큼 파급 효과가 크고 시너지 효과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많은 분들이 함께 나눔을 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한국에서 TV 보며 ARS로 기부하시는 분들 중엔 어려운 형편의 사람이 대부분이래요. 돈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전화기를 안 든다네요. '이런 푼 돈 말고 나중에 몇 천만원씩 한꺼번에 쏴줄게' 하는 생각인거죠. 그러면 너무 늦어요.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 사랑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앞장서는 게 우리같은 사람들의 역할이겠지요."
어쩌면 이홍렬의 이같은 선행도 방송생활 34년 동안 꾸준히 그를 지켜보고 응원해 준 시청자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홍렬은 더 행복하고 감사하단다. 그리고 더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 뿐이란다.
"우리 어머니가 쉰 하나에 일찍 돌아가셨는데 살아 생전 저한테 늘 강조하셨던 게 있어요. 신용과 책임감이죠.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맡겨진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전 평생 어머님 가르침 따라 살기 위해 굉장히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방송가 후배들에겐 '깐깐한 선배'로 비춰지기도 했죠. 쉽게 넘어가는 건 용납 못하고 '그건 안되지 제대로 해야지' 잔소리를 해대니까요. 하지만 그 '깐깐한 선배'란 소리가 결코 나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못되고 나쁜 거였다면 아마 지금 전 이 자리에 없지 않았을까요."
이홍렬에겐 아직도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많다. 그 중 대부분이 또 다른 나눔의 꿈이다. 54회째 이어오고 있는 기부특강 100회 채우기 맹인들을 위한 독서 낭독 봉사하기 같은 예쁜 소망을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이 적어 가슴 속에 품고 다닌다.
"일단 지금은 시간 구애 받지 않고 기쁨과 행복 누리면서 '느낌좋은 백수' 생활을 좀 더 즐겨보려고요. 그러다보면 누가 뭔가 하나 또 시켜주실 것 같아요. 좋은 일은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