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로 내 칼럼이 300회를 맞았다.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순전히 나의 소소한 일상들만 가지고, 내 주위의 신변잡기만을 가지고 칼럼 300회를 만들다니 이것이 쉬운 일인가. 나는 대대적인 잔치 계획을 세웠다. 2년전, 200회때는 지인들 이삼십명만 초대해 간촐하게 했었지만 이번엔 이 동네에 거주하는 내 독자들까지 모두 다 불러 축하를 받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인행사 등에서 만났던 몇몇 독자들에게 참석 여부를 미리 물었더니 모두들 기쁘게 예스, 라고 했다. 요리연구가 장선용 선생과 고 이재상 선생의 부인까지도 먼길을 마다않고 참석하겠다고 했다. 더구나 장선생은 축하 떡까지 만들어 오겠다니 이 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을까!
나는 무척 고무되었다. 그동안 날 무시하고 핍박한 할배들에게 이계숙이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알릴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초대된 사람들이 빈손으로 오겠나, 뭐라도 들고 오겠지. 축하도 받고 선물도 받아챙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꿩 먹고 알 먹고.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그런데 이 계획에 제동을 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젊은 J씨였다.
“1000회 쓴 사람도 가만 있는데 300회가 뭔 대수라고 이 바쁜 세상에, 이 불경기에 사람들을 오라 가라 야단법석을 떨까? 오라는데 안 왔다가는 꿈자리가 시끄러울 테니까 모두들 참석하기는 하겠지만 속으로 욕한다. 딴 게 민폐가 아니고 바로 이런 걸 민폐라고 하는 거야.”
‘민폐’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돌 잔치니 회갑잔치니, 가족끼리 조촐하게 해도 될 걸 동네방네 떠들며 알리는 게 민폐라고 질색한 사람이 바로 나 아닌가.
사실 잔치를 계획하긴 했었지만 일일이 전화 연락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던 나였다. 식료품 쇼핑 다음으로 하기 싫은 게 전화하는 일인데 그렇다고 건방지게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할 수도 없고(신문광고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거야 말로 야단법석을 떠는 것 같아서) 어떤 방법을 써야하나,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다. 그래서 좀 아쉽기는 하나 젊은 J씨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말도 잘 듣지!) 잔치 비용의 절반을 떼어 한 한인 단체에 기부했다.(착하기도 하지!) .
잔치를 취소하자 가장 아쉬워 한 사람은 내 열혈 독자중 한 사람인 이재정 여사였다. 커다란 선물까지 준비해 놨는데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여사는 300회 잔치에서 J씨, 젊은 J씨, H씨, P씨, K씨 등 내 글에 등장한 이니셜의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고 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가기 섭섭하니까 근사한 저녁을 살테니 예정했던 날짜에 이니셜의 사람들을 다 불러모으란다. 아이고, 그냥 넘어가기 진짜 섭섭한데 일단 밥이라도 얻어먹겠구나. 신바람이 나서 이니셜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젊은 J씨가 제동을 걸었다.
“우리를 신비한 이니셜의 이미지로 그냥 남아 있게 두셔. 그리고 몇 번 말했지만 제발 작가로서의 체통 좀 지키세요. 밥 못얻어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왜 늘 밥, 밥이야? ”
이래저래 다 놓쳤다. 꿩도 놓치고, 매도 놓쳤다. 어쨌든 제 칼럼이 300회가 되었습니다. 독자님들 축하해 주세요. 제 칼럼 300회를 축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