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달 13일 대전역 앞. DC 노숙자 자매 민미경·미영의 부친 민순홍씨를 만났다. 커피숍에 앉아 딸 얘기를 꺼내자 마자 민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투박한 손으로 얼굴을 자꾸만 쓸어내렸지만 터져나오는 눈물은 막지 못했다. 언젠가 잘 돼서 다시 만날거라 믿었던 두 딸은 50대의 아버지를 소리 내 울게 만들었다.
민씨의 첫 부인 박씨는 미경·미영 쌍둥이 자매를 낳은지 3개월 만에 자살했다. 1981년, 민순홍씨가 25세 때의 일이다. 두번째 부인은 아들을 낳았지만 쌍둥이를 미워했다. 결국 가정불화로 갈라섰고 엄마 잃은 세 남매는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고혈압·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는 노모 마저 잘못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돈을 벌러 집을 나설 때마다 민씨를 괴롭힌 걱정거리다.
“혹시 내가 교도소라도 들어가면,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아이들은….
못 배운 애비, 돈 없는 애비 만나 애들이 고생한단 생각에 괴로웠어요.”
현재의 부인을 만나 다시 가정을 꾸렸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넷째 딸을 낳았는데 여전히 돈벌이는 시원찮았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날들이 이어지니 차라리 다 같이 죽어버릴까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된다’는 누나의 만류에 쌍둥이 자매를 입양 보내기로 했다. 그나마 둘이 함께면 서로 의지하며 잘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좋은 부모 만나 잘 먹고 잘 배우고 행복하게 클 거라고 했다. 대학생 쯤 되면 친부모를 꼭 찾아올 거라고도 했다. 떠나보냈지만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가슴 아픈 모습으로 다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쌍둥이 소식을 처음 접한 건 작년 봄. 본지를 통해 보도된 자매의 기사를 LA에 있는 친척이 읽고 민씨에게 알려준 것이다. 흐릿한 사진에는 얼굴이 거의 안나왔지만 한 눈에도 자기 딸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도박에 빠진 처남한테 사기를 당해 빚에 쫓기고 있었어요. 내 인생 왜 이러나, 죽으려고 자살 시도까지 했죠. 그런데 애들이 고생하는걸 보니 ‘내 딸들 데려와야겠다. 그 전엔 못 죽겠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그 때부터 미친 사람처럼 딸을 찾으러 다녔다. 입양 기관을 찾아가고 청와대 민원실 등에 딸을 데려올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입양 기관에선 “노숙자 딸들 찾아서 뭐하나. 그냥 잊어버리라”며 그를 회피했다. 무작정 찾아가기엔 미국은 너무 넓었다. 자매를 오랫동안 돌봐주던 장두영 목사와 연락이 닿아 아이들 소식을 계속 들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노숙자 자매의 기사를 본 SBS TV 스페셜팀이 민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취재를 통해 딸들과 만나게 해주고,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해 촬영을 허락했다. 미국에 와 자매와 상봉할 날만 기다렸지만 젊은 시절 폭력, 절도 등 전과가 있는 민씨는 미국 비자 발급이 힘들어 결국 아들 복기씨가 비행기에 올랐다.
복기씨는 DC에서 배회 중인 쌍둥이 누나를 만나 아버지 사진도 보여주며 ‘내가 동생’이라고 했지만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복기씨는 “미영이 누나는 몸이 아픈지 누워만 있고, 미경이 누나는 사진을 찢어버리고 내 배를 툭 치더니 본 척도 안했다”고 전했다. 부친 민씨는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갔으니 한국에 대한 그리움, 미국에 대한 실망, 부모에 대한 원망, 증오심이 가슴속 깊이 차서 그랬을거다”고 말했다.
민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은 지난 23일(한국시간) 방영됐다. 가족은 여전히 떨어져 있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
“꾸준히 편지를 써서 아이들 마음을 열 겁니다. 그러면 한국에 데리고 와 치료도 받게 하고 이제라도 온 가족 모여서 행복하게 살아야죠.”
☞DC 쌍둥이 노숙자 자매
1981년생. 1986년께 메릴랜드의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으며, 성인이 된 후 독립해 네바다에서 함께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 2년 전부터 워싱턴 일원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지난해 봄 본지에 보도되며 한인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한인 개인 및 단체, 교회 등이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건넸으나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배회해왔다. 지난해 5월과 12월 등 두차례에 걸쳐 무단침입 등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오랜 노숙 생활로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크며, 정상적인 대화가 힘든 상태다.
<참조 본보 2011년 5월 27일·31일, 6월 14일, 10월 20일, 12월 15일자 a-1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