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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의 상담수기] 4-"새가 무서워" - 새장에 갖혀버린 나

Vancouver

2001.10.0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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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
만성 조울증으로 시달리던 아버지는 기분이 울적할 때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소파에 앉아 있기가 일쑤였고, 어쩌다 기분이 좀 좋아진 날은 새총을 들고 새사냥을 나가시곤 했다.
새사냥을 나가신 날은 어김없이 몇 마리의 새를 잡아 큰소리로 웃으시며 자랑하시듯, 다섯살 짜리 나에게 만져보라 내보이시곤 했다.

아버지가 그러실 때마다 난 내방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곤 했지만, 그때 하도 놀라서 무서워서 였는지 아버지 손에 힘없이 죽어 있던 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20살초 반에 갓 결혼한 그녀가 상담실로 찾아 온 이유는 바로 그 '새' 때문이었다.

새가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다는 것. 새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고, 새를 보면 마치 그 새가 자신을 공격할 것만 같다는 것이었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곳 밴쿠버에 살면서 새가 무서워 밖에 나갈 수도 없다니. 신혼생활에 남편과 함께 산책도 하고 싶고, 남편이 즐겨먹는 닭요리도 해주고 싶지만, 그녀의 새에 대한 두려움은 남편과의 다정한 산책과 남편을 위한 닭요리는 물론 새를 기르고 있는 친구집에의 방문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새와 관련된 모든 일상으로부터 그녀 자신을 가두어 놓고 말았다.

그녀의 새에 대한 두려움은 '비현실적인 것'이 였지만, 그녀의 새로 인한 일상생활의 장애는 '지극한 현실'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와 같이 특정한 대상이나 행동, 상황에 처했을 때 비현실적인 두려움과 불안증세가 생겨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대상이나 상황을 피해버리는 장애를 일반적으로 공포증(phobia) 이라고 한다.

공포증은 크게 단순공포증(혹은 특수공포증과) 사회공포증으로 나누어 진다.
단순공포증에는 개나 뱀, 쥐, 혹은 새들에 대한 공포증, 거미 등의 곤충에 대한 공포증, 갇혀 있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폐소공포증,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 비행기 여행공포증 등이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경우 이를 사회공포증이라 한다.

단순공포증의 경우 일반적으로 흔한 공포증으로 남성의 4%와 여성의 9%가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정상적인 공포증의 경우는 비록 두려움과 회피반응이 개인적 고통을 주지만, 일상생활이나 사회적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새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적인 생활에 까지 큰 지장을 주는 경우 치료를 요하는 공포증에 해당된다.

무엇이 그녀를 새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방시킬 것인가? 새가 없는 세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새를 피해 계속 집에만 있을 수도 없고. 그녀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녀에게 힘들지만,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자신을 '새에 노출' 시킬 것을 권유하였다.

새를 피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산책을 하지 않고 집에 그냥 있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보호하에서라도 산책을 하고, 새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새가 나오는 영화도 보고. 새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새를 피해 그 적응력을 약화시키고 두려움을 키우기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인 새에 자신을 노출시켜 면역성을 키워감으로써 그녀는 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몇 개월동안 계속된 상담시간 동안 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함께 새들 앞을 지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새가 있는 그림도 함께 보고. 더 이상 상담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어느덧 새겁장이에서 새전문가로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사람과 환경과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민생활. 때로 주변에서 문화공포증, 언어공포증, 사람공포증에 힘들어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본국 사람들을 만나게 될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잘하던 말도 막상 하려고 하면 식은땀만 나고, 그래서 가능한 영어로 말한 기회를 피하고, 문화 이질감으로 이곳에서의 이민생활이 그저 괴롭고 두려울 뿐이다.
문화, 언어, 사람을 피하고 그로 인해 두려워하기 보다 위에서 처럼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자신을 문화, 언어, 사람, 내가 두려워 하는 대상과 상황에 노출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겁쟁이에서 전문가로의 변신, 바로 두려움에 대한 도전의 대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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