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가을이 깊어지자 '북미대륙 향수병'이 도지기 시작하는데…
정확히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10년 반 가량의 미국생활을 일단 접고 이곳 이스트 밸리로 '귀향'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보다 앞서 서울을 떠나 이스트 밸리에서 살기 시작한지 1년 가량이 흘렀던 시기이기도 했다.그때 마루 앞에서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토란 줄기를 다듬었었다. 비교적 오랜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막 돌아온 뒤여서 그랬을까. 고국 하늘 아래서 한가롭게 일하는 내가 한 폭의 가을동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코앞에 함께해서 그랬는지 어린애가 된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삶이 한줄기 가을 빛처럼 시리도록 맑게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암 발병 사실이 확인된 건 그로부터 대략 보름 이쪽저쪽이 지나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난 해 이 즈음을 떠올리면 더욱 꿈만 같다. 가을동화 같았던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치료 차 서울에서 머무는 바람에 아버지도 간병을 위해 함께 이스트 밸리의 집을 비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할머니 모시기가 온전히 내 몫으로 떨어진 것도 그 때부터였다. 암 수술과 항암 투병을 시작한 어머니와 속세에 애착이 남다른 할머니 사이에서 비로소 삶의 팍팍한 모습들을 온몸으로 대해야 했다. 그러나 생활근거지가 시골이라는 이유로 힘든 점은 없었다.
엊그제 총각김치를 담았다. 재료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이 엄마 셋이 준비했다. 양념을 무청과 무에 섞어서 버무리는 건 내 몫이었다. 지난해 귀국해서도 얼마 안돼 김치를 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이 즈음 김치 담그기는 가을을 수확하고 겨울을 준비하는 신호탄과도 같다. 머지 않아 김장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풍성하다. 설령 흉작이라도 그렇다. 노랗게 혹은 울긋불긋하게 물드는 나뭇잎들이 아니더라도 가을은 그 자체로 따스한 색감을 지녔다. 그러나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가을이면 한편으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흔히 일장춘몽이란 말들을 하지만 나에게 삶이 한편의 꿈처럼 느껴지는 시기는 대체로 가을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계절도 그래서 내겐 가을이다. 엉뚱하다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는데 내게 집을 나가 떠돌고 싶은 곳은 어김없이 북아메리카 대륙이다. 한번은 10개월 또 한번은 약 50일에 걸쳐 북미지역을 자동차로 여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건 아니고 그 곳의 자연들이 주마등처럼 혹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곤 한다.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한국의 가을 속에 있으려니 더더욱 미국이며 캐나다의 들판과 산들이 생각난다. 가질 수 없기에 아니 당장 그 곳으로 달려갈 수 없기에 보고픈 마음이 더 간절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사람을 좇아서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옮긴 기억은 없다. 자연 환경이 내겐 삶의 근거를 옮기는 데 매번 가장 주요한 동기를 부여했다. 이스트 밸리의 내 집은 아담한 계곡 지형에 양지바른 남향으로 들어서 있다. 집을 찾는 사람들마다 집 자리가 좋다고 한마디씩 치사를 건넨다. 내 생각에도 좀 과분한 느낌이 들곤 할 정도로 좋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북아메리카를 그리워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사람이나 정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자연이 그렇다는 것이다.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북미로 돌아가 그 곳에서 다시 한동안 살아보고 싶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북미대륙을 좋아하는 상사병이 도지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된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