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얼음공주'로 불렸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차가운 이미지를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이미지로 바꿔보겠다며 즐겨 한 농담이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법이다. "첫째 냉장고 문을 연다 둘째 코끼리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냉장고 문을 닫는다." '노력이 가상하다'는 평을 받기는 했으나 정작 그 농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철 지난 유머를 들으며 썰렁한 표정을 감추려 애써야 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달 대선정국 최대 화제는 양당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간의 TV토론이었다.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게 있다. 토론에서 이기는 법이다.
첫째 사회자나 청중이 어떠한 질문을 해도 무조건 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회로 삼는다. 공격할 때는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최대한 거세게 몰아붙인다.
둘째 상대방의 답변 차례가 되면 "또 저 소리 식상하구만"하는 표정으로 비웃음을 머금고 있다가 때론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또 때로는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을 거듭하며 상대방 주장을 김빼기 한다.
셋째 두 사람이 맞붙어 설전을 벌일 때는 상대 발언의 허점을 놓치지 말고 말꼬리를 잡고 자신은 준비해 온 좋은 공약만 거듭 강조한다. 멈칫하거나 주춤거리면 지는 거다. 상대가 치고 들어올 틈을 주지 말고 사회자가 "이제 그만" 이라고 외쳐도 상대방이 물러설 때까지 계속해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긴다.
평상시 인간관계에 필요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경청 자기 순서 기다리기 이런 미덕은 잠시 잊어야한다. 아니 잠깐 아이들이 정말로 이런 게 토론회 비법이려니 하고 따라할 까 무섭다. 농담이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가 이달 들어 두 차례 TV토론을 벌였다. 토론회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랬다. 누가 더 토론을 장악하고 공격 포인트를 얻었느냐 누가 더 상대방 말문을 막히게 했느냐를 물었다. 디베이트가 언제부터 격투기 종목에 올랐는지 승자는 '말싸움을 잘한' 사람이었다.
토론회가 진행되는 90분 동안 국정현안에 대해 참 많은 견해들이 오고 갔지만 정작 나중에 승부를 결정지은 건 그들의 공약이 아니라 누가 싸움을 더 잘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1차 토론에서 승리한 롬니는 오바마가 캠페인 내내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부유층에 혜택을 주는 5조 달러 감세안'에 대해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잡아떼 오바마 말문을 막히게 했다. 2차토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치솟는 개스값과 관련 "올해 정부 땅에서 원유 생산이 14% 줄고 천연가스 생산은 9%나 줄었다"는 롬니의 지적에 "그건 사실과 다름"이라는 말을 던지고 뒤돌아서 쫓아오며 질문하는 롬니를 머쓱하게 했다.
올해 대선은 사상 최대의 돈 선거다. 오바마와 롬니가 선거자금으로 모금한 돈은 2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 돈으로 지금 경합주의 TV광고를 도배하고 있다. TV 정치광고의 90% 이상은 상대를 비난하는 네거티브 공세다. 한 후보가 한 후보에게 덧씌운 이미지를 보고 차기 미국 대통령을 '바이(Buy)'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가게에서 물건 고를 때 옆가게 점원이 거품 물고 떠드는 조언을 듣고 고를 것인가 아니면 포장이 그럴싸하게 잘 된 물건을 고를 것인가. 11월 6일 선택해야하는 대통령 이미지 좋은 사람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미국을 위해 더 나은 비전과 실천방안을 가진 후보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