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 세월이 40년이 넘는다는데…. 지난 주말 어느 유명 가수의 아내가 숨을 거두자 모든 언론 보도의 방점이 숫자에 찍혔다. 이 사실이 도시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수의 이름은 알로 거스리. 1960년대 말 밥 딜런과 함께 저항문화의 '큰 바위 얼굴'이었다. '포크송의 대마왕' 거스리의 아내가 결혼 43주년을 기념한지 얼마 안돼 급성 간암으로 눈을 감았다.
그는 아내 재키를 할리우드의 나이트클럽 '트루버도어'에서 만났다. 재키는 이 클럽에서 캐시어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매사추세츠주의 한 외딴 마을에 250에이커나 되는 농장을 사들여 이곳서 결혼식을 올리고 평생을 살았다. 성공한 연예인들만이 살고 있는 베벌리힐스가 부부에게는 맘에 들지 않았다.
남편은 공연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아내는 4남매를 키우며 농장을 지켰다. 그런데도 함께 산 세월이 43년. 만남과 헤어짐을 인기관리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요즘 스타들에게 거스리 부부 이야기는 흘러간 전설처럼 들렸을 것이다.
거스리는 아내의 죽음을 페이스북을 통해 팬들과 지인들에게 알렸다. 그 내용이 사람들의 가슴 한켠을 찐하게 울렸다.
부음을 알리는 그의 글은 뜻밖에도 부부싸움으로 시작된다. "우리 부부는 항상 서로를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운을 뗀 뒤 "가방을 싸 집 문밖을 나가려 했던 적이 무척 많았다"고 옛일을 돌이켰다. 여느 부부나 다름없었다.
그때마다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은 처음 만났을 때의 '첫 사랑'이었다고 했다. "바로 당신"이 떠오르는 순간 아내에게 달려가 진한 포옹을 나눴다. 그러기를 해가 거듭되고 40년이 넘고… 그렇게 한 여자와 한 곳에서만 줄곧 살았으니 거스리는 외길을 걸었던 셈이다.
알로 거스리 그는 누구인가. '모던 포크의 아버지' 우디 거스리(1912~1967)의 아들이다. "이 땅은 너의 땅 이 땅은 나의 땅/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멕시코만에서 레드우드 숲까지/ 이 땅은 너와 나를 위해 생겨난 땅이라네." 대공황 시절 99%가 1%에 의해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발한 이 노래가 그의 아버지가 쓴 불후의 명작이다.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대표작이 '앨리스의 레스토랑'이다. 쓰레기를 함부로 거리에 버렸다며 50달러의 벌금을 문 것이 전과자로 처리돼 베트남전 징집 결격자가 된 사연을 무려 18분30초 가량의 노래에 담았다. 우스꽝스런 현실을 꼬집은 반전 포크송이다. 노래 말미에 그는 징집에 응하지 마라 전쟁을 끝내라는 슬로건을 읊조리며 기타를 내려 놓는다.
교회를 개조해 만든 공동체 '앨리스의 레스토랑'은 숱한 젊은이들이 오고 가는 곳. 식당의 안주인 앨리스는 이들 반문화의 영웅들에게 수유를 해주는 만인의 어머니다. 거스리는 어쩌면 아내 재키에게서 앨리스를 찾아내지 않았나 싶다.
이 시대의 음유시인에게 이제 '앨리스' 재키는 떠나고 '레스토랑'만 홀로 남아있다. 그래도 그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삶은 이승이 끝나도 계속 이어질테니까(life after lifetime).
'중년의 위기' '황혼이혼'이 일상의 삶처럼 회자되는 요즈음 거스리 부부가 평생을 티격태격하며 엮어나간 '러브 스토리'는 너와 나의 사랑 이야기 같아 가슴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