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국립 동물원에 가면 영장류 사육장 구역에 싱크 탱크 (Think Tank)라는 건물이 있다. 이 곳에서는 ‘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전시물이나 자료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이란 무엇이고 ‘생각’은 어떻게 발전되어 온 것일까? 생각하는 능력의 발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도구의 사용’과 ‘언어의 사용’, ‘사회성’을 꼽을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 가면 실내 중앙에 테이블이 하나 있다. 테이블 가운데를 막아 놓아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을때 서로 눈을 볼 수는 있지만 다른 것은 보기 힘들다. 테이블 양쪽에는 동일한 세트로 이루어진 도형들이 있고, 이곳에서 우리들은 ‘언어 게임’을 할 수 있다.
게임의 규칙은 지난주 필자의 칼럼에 소개 된 것처럼 서로 말을 주고 받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도형들은 볼 수가 없는 가운데, 한 사람이 도형들을 이리저리 나열해놓고 상대방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양쪽이 도형들을 동일하게 나열해 놓으면 대화 성공,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된다. 둘이 서로 대화를 잘 나누고 뜻을 맞춰야 이길수 있는 ‘윈 윈 게임(Win Win Game)’인 셈이다.
나는 동물원에 가면 반드시 이곳에 가서 사람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관찰을 한다. 지난 번에는 미국인 가족이 이 게임판에서 차례차례 마주앉아서 서로 도형 맞추기 설명 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처음에는 손자들을 데리고 온 노부부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이다. “그러니까, 노란 정사각형 있잖아요, 그 옆에 파란 직사각형을 놓아요.” 부인이 설명을 하자 남편이 되 묻는다.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서로 열심히 듣고 설명을 하지만 도형들이 제대로 자리를 찾는것 같지가 않고 자꾸만 애매한 질문만 이어진다. 한참 지나자 부인이 탄식을 하며 깔깔 웃고 만다. “아이고 수십년을 살아도 이것을 서로 못맞추나!”
교육열이 뜨거워 보이던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차례차례 맞은편에 앉혀 놓고 같은 게임을 반복한다. 아이들은 처음 해 보는 게임인지라 어리둥절한채 동문서답을 하며 도형들을 이리저리 옮겨보는데, 내가 곁에서 관찰하다보니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이 게임을 반복했던 할아버지의 설명 실력이 점차 좋아진다. 설명을 쉬운 말로 정확히 하고,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며, 차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상대방을 질책하지 않고.
이 가족은 평범한 중산층의 미국인들이었고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중산층의 평이한 언어였다. 한마디로 미국어 원어민들이었는데, 이 미국어 원어민들이 간단히 도형 맞추기 언어게임을 하는일이 만만치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 쉬운 자기네 나라 말로 그 간단한 도형 몇가지를 서로 설명을 못한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로 현장에 가서 보면 그 간단한 설명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된다.
이 글이 믿어지지 않으신다면, 주말에 단풍 구경 삼아 가족들과 국립 동물원에 소풍을 나가서 ‘싱크 탱크’에 들러서 그 게임을 직접 해 봄직도 하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그걸 해?’하고 걱정 안하셔도 된다. 그냥 한국어로 해보셔도 된다. ‘한국어로 설명하는 거야 누워서 떡먹기지’라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내가 관찰한 소견으로는 자기 모국어로 설명하는 일이나 영어와 같이 새로 배운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나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만만한 내 모국어로 설명 할 때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편안하게 말을 한다. 그래서 부주의한 소음과 실수가 많이 들어간다. 조금 불편한 ‘영어’로 설명할 때 우리는 단어를 고르고 골라서 최선을 다해서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애 쓴다. 영어를 잘 못하니까 설명이라도 정확히 하려고 좀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모국어로 하건 영어로 하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언어에서 중요한 것이 ‘유창함’만은 아니다. 유창성이 좀 떨어져도 의사전달이 정확하다면 그는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고, 그래서 더욱 신뢰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