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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 불편해?…사회 현실 외면하는 무책임한 위선이다"

Los Angeles

2012.11.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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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온 김기덕 감독과의 못다한 이야기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김기덕이란 사람을 궁금해 한다. 그의 영화 속 일부 장면이 그렇듯 어쩐지 어둡고 차갑고 폐쇄적이거나 강하고 극단적인 사람이 아닐까 넘겨 짚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과 5분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 모든 편견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는 훌륭한 언변을 지닌 비범한 영화인이자 당당히 자기 표현을 하는 예술가일 따름이다. 다만 세상과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고 그것을 굳이 돌려 말하거나 숨기지 않을 뿐. 지난주 LA를 방문해 AFI필름페스티벌과 시네패밀리 회고전 '피에타'의 아카데미 본선진출을 위한 홍보활동 등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은 이 곳에서도 그 성격 그대로 거침없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 영화엔 보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있다"고 말하는 찬란한 자부심 "'피에타'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최종후보로 뽑힌다면 아카데미를 다시 보겠다"는 도발적 당당함은 그 일부였다. 김기덕 감독과의 못다한 이야기를 지면으로 옮긴다.

- '피에타'는 물론이고 김기덕 감독의 여러 작품들이 보기 '불편하다'는 관객들이 있다.

"그런 관객들 꽤 있는 것 안다. 근데 그걸 불편해 하면 안되지 않을까. 그건 결국 내가 자기들 기분을 안 맞춰 줬다는 건데 내가 관객들 기분 맞춰주려 영화 만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관객이 극장에서 팝콘 먹으면서 '나 좀 웃겨봐' '어디 눈물 한 번 흘리게 해봐' 하는 식의 권력으로 작동하고 존재하는 것은 위선이다. 내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모습 예를 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권이 무시되고 돈 때문에 자살을 하고 복수를 하는 현장은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어디든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당겨보고 고민하는 기회를 갖자는 건데 그걸 보는 게 왜 불편한가. 불편할 일이 아니라 진실을 보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생긴 것 뿐이다. 내게 그것은 남에 대해 혹은 남의 불행에 대해 관심이 없단 말로 들린다. 남이야 어떻든 내 기분 상하고 내 행복 침해하는 것은 무엇도 참을 수 없단 뜻 아닌가. 조금만 관심 갖고 둘러보면 내 가족 친지들 중에도 사회와 돈의 부작용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걸 애써 외면한다는 것은 불행과 분열이 조장되고 인격이 훼손되는 데도 그저 무책임하게 있겠단 소리다. 그거야말로 이시대의 공범 아니겠는가. 선거로 치면 투표 안하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 구원에 대한 테마를 주로 다루다 보니 김기덕 감독의 '종교관'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다.

"세상사의 모든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해결하기엔 그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이 노력하고 절충해서 해결하기엔 이 시대의 너무 많은 비극들이 해결점을 못 찾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젠 인간들이 믿는 신의 개념으로 봐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사회의 많은 비극은 인간이 짊어 지고 가야 할 큰 운명이다. 신은 인간에게 아주 아날로그적인 동전 하나를 던졌던 것 같다. 인간끼리 물물교환과 소통의 수단으로 준 것인데 인간이 이를 점점 변질시켜 결국 내면의 욕심이 확대돼 자기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유령으로 만들어버렸다. 신은 이렇게 돼 버린 인간들의 모습을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 '피에타'로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

"그런 것 없다. 여전히 내 영화 '아리랑'에 나왔던 작은 오두막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만 하고 살고 있다. 태양열 전지를 쓰고 화장실도 없어서 들판으로 가고 먹는 것도 최소한만 먹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 최소한의 쓰레기만 내보내며 산다.난 그냥 자연의 일부로 살고 싶다. 돈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피에타'로 극장에서 들어오는 돈이 있을 테고 전에 제작한 '풍산개'로 들어오는 돈도 있을 텐데 그건 다음 작품이나 후배 영화인들을 위한 제작비로 쓰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그 돈을 가지고 내 삶의 환경을 확대시키는 것은 없다."

- 아카데미 최종후보작 선정이란 '꿈'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내 꿈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한국 운동선수들이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따는 게 그 선수만의 꿈은 아니지 않나. 결국은 개인의 가치보다 국가의 가치 국가의 브랜드가 고려되는 세상이다. 특히나 한국은 외피적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열등감을 가진 이들도 많은 사회니 더 그렇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탄 후 시골 논둑길을 걸어가니 할머니들이 달려와서 '아이고 고생 많았다. 장하다'라고들 하시는데 정작 내 영화는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는 분들이다. 한국이 가진 맹목적 애국주의 아니겠나. 미국이나 프랑스에 가면 이웃집 사는 사람이 황금사자상을 타도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그 영화를 보고 감동을 했느냐 안했느냐만이 문제다. 그들은 영화를 두 눈으로 보며 확인하고 감동하고 그래서 인정을 하는 것인데 우리는 사실확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9시 뉴스에 등장하고 신문에 얼굴 나오면 '장하다'라고 하는 분위기다. 물론 그것을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또 다른 에너지일 수도 있다. 따뜻한 인간미와 연대감으로도 볼 수 있는 반면 사실을 알고 확인한 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글=이경민 기자 사진=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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