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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의 상담수기] 5-'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나'

Vancouver

2001.11.0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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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가 상담실을 찾았을 때는 그녀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할까 하고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그녀는 매우 상냥했고, 어두운 기색 없이 상담시간 내내 나를 미소로 대했다.
거의 말 수가 없는 그녀에 대해 조금 수줍어하는 성격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규모가 비교적 작은 회사에 비서직과 행정직을 함께 담담하고 있는 사회 초년생인 그녀가 처음 도움을 청한 문제는 바로 '전화받기' 였다.
그녀의 일이 일인만큼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일이 그녀의 업무 중 하나였는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혹시 사람들이 자신의 전화대화를 엿듣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자신 있게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고..
특히나 가끔씩 걸려오는 친구나 가족들과의 사적인 전화대화는 진작부터 핸드폰을 구입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게 부탁하고 전화가 오면 사무실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화를 받는 동안 다른 이들이 엿듣을 것 같고, 또 그것으로 자신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전화대화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그녀가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자신 없어' 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
전화대화 뿐 아니라 어떤 모임에 가서든 단 한번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나쁘게 평가할 것만 같아서다.

사회 초년생으로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 생소하고 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게 되는 것.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사회의 생소함, 그리고 가끔씩 하게 되는 실수는 사회를 학습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자신에 대한 '자신 없음', 또 이 자신 없음은 단순한 수준을 넘어서 '자기비하'로까지 발전된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외모도 못났고, 심지어 전화대화하나 제대로 자신 있게 못하는 자신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보'라고.
해맑게만 보이는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이 '낮은 자존심(Low Self-Esteem)', 혹은 '자기비하'는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녀의 이런 '낮은 자존심'은 다름아닌 어린시절 아버지의 농담어린 그녀에 대한 호칭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로 오빠 한명을 둔 집에서는 막내 외동딸이고 어려서부터 조금 수줍은 성격이었다는 그녀에게 어린시절 일찍이 직업을 잃고 집에 계시던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집에 계시던 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는 바로 그녀였는데 아버지는 늘 자신을 '못난이'라고 불렀다고 그녀는 기억했다.

커가면서 아버지의 '못난이'라는 호칭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되기 보다는 혹시 정말 내가 못난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발전되었다고 했다.

또한 집에 계시던 아버지는 집안일 사소한 것 까지 간섭을 하실 뿐 아니라, 그녀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야단치시고. 또 직업을 잃고 집에 계시던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간에 자주 큰 다툼이 있었는데, 부모님 사이에서 그녀는 부모님이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와 힘듦을 함께 나누어야 했다.
수줍음 많던 어린 그녀였지만,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늘 생각했고, 특히 아버지 앞에서는 혹시나 어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늘 신경써야 했다고. 결국 아버지의 사소한 듯 보이는 농담어린 호칭과 부모님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스트레스가 이렇듯 그녀의 낮은 자존심이라는 심리적 고통으로 발전한 것이다.

낮은 자존심은 심리학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감정을 말한다.
낮은 자존심은 위에서와 같이 특히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어린시절,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학대나 무관심, 혹은 지나친 통제가 향후 이와 같은 자녀의 심리적인 고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고통은 사회적인 부적응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자녀를 감싸고 지나치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녀들은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자녀의 '기'를 꺾는 것도 문제가 된다.
혹시 오늘 부모로써 나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자녀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나의 사소한 농담한마디가 자녀의 자존심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김미라 [email protected]
-트리니티 웨스턴대학 상담심리학 석사
-BC주 아동가정복지부 상담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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