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출신 1호 드림웍스 입성 모델링 수장으로 '가디언' 작업 한인 아티스트 도 10여 명 참여
매년 그렇듯 올해도 여지없이 연말 박스오피스 경쟁이 뜨겁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트와일라잇'의 공세는 여전히 매섭고 '007 스카이폴'도 계속 선전 중이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도 이번 주말 극장가의 강력한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이 혼전 가운데서 유독 빛나는 한 작품이 있다. 드림웍스 표 애니메이션 '라이즈 오브 더 가디언스(Rise of the Guardians.이하 가디언)'다. 산타클로스 이스터 버니 이의 요정 샌드맨 잭 프로스트 등 어린이들의 상상 속에 살아 숨 쉬는 여러 수호신 캐릭터가 힘을 합쳐 동심을 파괴하려는 피치의 계략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았다. 제작비 1억4500만 달러의 대작답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빼어난 영상미에 흥미진진하고도 감동적인 스토리까지 더해지며 개봉 직후부터 가족단위 관객을 중심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어린이 관객들을 완벽히 사로잡은 것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어린이용 어벤저스'인 셈이다.
드림웍스의 모델링 수퍼바이저 허 현 감독은 이 작품을 탄생시킨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감독 프로듀서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제작 초반부터 '가디언'의 캐릭터와 배경을 빚어냈다. 감독의 상상 속에 있던 추상적 아이디어를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형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4년을 꼬박 쏟아 부은데다 모델링 부문의 수장으로 완성한 첫 작품이기에 '가디언'에 대한 허감독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동안 나왔던 다른 어떤 애니메이션과도 차별화되는 멋진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새롭고도 친근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형상은 스타일리시하게 질감이나 표면 처리는 트래디셔널하게 작업했죠. 어린이들에게 정말 '있음 직한' 캐릭터란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배경의 스케일은 엄청나게 키웠지만 그 속의 디테일은 기존 작품의 2배 이상 늘렸습니다.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배경 창조에도 신경을 많이 썼죠."
그가 담당한 모델링이란 쉽게 말해 컴퓨터 안에서 '조형'을 하는 역할이다. 2차원의 스케치를 360도 입체 모형으로 빚어내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하는 게 그의 일이다.
"특별히 '가디언'에선 캐릭터를 비롯한 주요 디자인에 모델링 팀이 깊이 관여했어요.덕분에 내부적으로도 캐릭터와 배경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 손을 거친 캐릭터 하나하나에 더 큰 애정을 가질 수 있었죠. 실제로 작품 속 제이미라는 남자 아이 캐릭터는 제 큰아들에게서 모티브를 따 오기도 했고요."
허 감독이 '가디언'을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따뜻한 스토리와 의미 있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들이 아이답지 못한 세상이잖아요. 어린이들도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아요. 디지털 세상에만 노출되면서 상상력도 잃어 가고 있죠. 전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순수함을 되돌려 줄 수 있다고 믿어요. 꿈을 믿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도 함께 주죠. 어른들에게도 나이 들어가며 잃어버린 동심을 추억하고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가디언'은 가장 '드림웍스 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엔 우리 사장님(제프리 카젠버그.드림웍스의 설립자이자 CEO)도 '가디언'같은 새로운 스토리와 스타일이 대중에게 사랑받을까 고민하는 듯 했어요. 하지만 완성되고 나서는 '이것이야말로 드림웍스 스타일'이란 확신이 생겼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모든 시련을 거친 후 영웅으로 우뚝 서는 이야기 예쁘고 잘생기지 않아도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모티브야말로 드림웍스가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니까요."
'가디언' 작업에는 허 감독을 필두로 10여 명의 한인이 참여했다. 허 감독이 수퍼바이저로 있는 모델링 팀 뿐 아니라 라이팅 캐릭터 이펙트 등의 분야에서도 힘을 보탠 한인 아티스트들이 많다. 유학생 출신으로 드림웍스에 입성한 1호 한국인인 허 감독에겐 이 역시 큰 기쁨이었다.
"내년이면 제가 드림웍스에 입사한 지 10년이 돼요. 그동안 '샤크 테일'부터 거의 모든 드림웍스 작품에 참여해 왔지만 이번처럼 행복하게 일 한 적이 없었어요.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나 팀워크도 아주 좋았고 커뮤니케이션도 정말 잘 됐죠. 함께 한 한인 아티스트들이 많아서 더 끈끈하고 재미있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허 감독은 '가디언'을 끝내고 잠시 쉴 틈도 없이 벌써 2015년에 개봉할 신작 업무에 돌입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의 모델링 수퍼바이저 타이틀에서 또 한 단계 도약해 제작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길 꿈 꿔보기도 한다.
"기술 방면에선 비주얼 이펙트 수퍼바이저가 돼 보고 싶기도 하고 미술 방면에서 아트 디렉터가 돼 보고 싶기도 해요. 어느 쪽이건 제 나름의 노력을 더 많이 해야겠죠. 언제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건 '가디언'처럼 온 가족이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드는 게 최고의 꿈이자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