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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딸의 남자친구 품평하는 법

Los Angeles

2012.11.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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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윈드화랑대표·작가
"엄마 나 남친 생겼다." 딸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묵묵부답. 곧이어 사진이 날아온다. "무지 잘 생겼지? "

세상에 이게 웬 말! 못 생겨도 이만 저만 못난 게 아니다. 그래도 절대 함구! 잘 못 말했다가 싸가지 없다고 '팽' 당한 적이 한 두 번인가. 드디어 전화가 왔다. "엄마 내 새 보이프렌드 정말 멋있지?" 라며 내 입장 표명을 다그친다. 못난데다 클래스까지 없어 보인다고 말하기 민망해 "근데 좀 터프해 보인다"고 했더니 "잘 봤어. 운동해서 터프하고 매력적이야" 찬물 끼얹으려다 접착제 붙여주는 꼴이 됐다.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게 장성한 자식들의 남친 여친이다. 나이 차서 결혼 적령기로 접어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남자 친구가 없을 땐 애인 및 배우자 선택에 죽이 척척 맞던 딸이 남자만 생기면 호랑이 새끼로 돌변 속물적이고 비인도적인 왕짜증 엄마로 몰아세운다.

전 번 남친은 키 작은 것 빼곤 여태까지 고른 녀석 중에선 그런대로 괜찮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쥐꼬리만한 걸로 줬다며 불평하길래 "갠 좀 짠돌이야"라고 맞장구 쳤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이럴 땐 '싸구려(Cheap)'란 단어를 안 쓰고 '경제적(Economical)'이라고 해야 한다나! 졸지에 영어 학습까지 받는 상황에 도달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현재 진행형인 딸의 남친에 대해서는 '토 달지 말기' 싫으면 '무저항주의'로 대처하기로 작정했다. 부모의 불같은 반대는 붙는 불에 기름만 붓는 꼴인걸 연속극에서도 자주 본 터. 불간섭이 간섭보다 '말빨'이 선다는 것도 체험으로 익혔다.

아들은 그 반대로 친구들과 희희낙락 놀기만 하고 여자를 잘 안 밝힌다. 이도 걱정. 무슨 문제가 있나? 엄마 좋아하는 현모양처 타입 데려온다고 큰소리치지만 조만간 상대가 등장하면 무슨 사태가 발생할지 모를 일 눈꺼풀에 콩깍지 씌우고 덤벼들면 그 사태를 누가 막으랴.

"저 이사 가요." 셜리가 아파트를 옮긴단다. 화랑 매니저인 셜리는 만사 반듯한 모범 아가씨다. 사귄 지 한 달 밖에 안된 남자 아파트에 들어간단다. 깜짝 놀라 "네 엄마 한테 말했니? 사귄 지 얼만데 벌써 동거야?"라고 말하려다 "결혼 전에 함께 살아보는 것도 좋지"라고 맘에 없는 말을 건넨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서 고등어 훔쳐먹는 걸 본 기분이랄까.

말도 안 되는 상대와 결혼 하겠다고 우기면 "한 번 살아보고 결혼해"라고 충고하는 부모가 는다고 한다. 이혼율이 장난이 아니니 부모라고 안 변할까. 내 친구는 "함부로 잠자리 하지 마라"는 혼전 섹스 경고 대신 "제발 애나 낳지 마라"라고 타이른다고 한다.

자식에게 존경받기가 가장 힘들다. 평소 "울 엄마 최고 내 인생의 코너스톤!" 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던 자식이 사랑이 빠지면 편 가르기를 시작한다. 여태 잘 받쳐주던 받침돌이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다. 내 편인 줄 알았던 자식이 남의 편이 돼 왕따 당하는 그 황당함이란.

딸 남친 땜에 속 끓이면 선배가 "내 버려둬 몇 번 바뀔테니. 결혼 식장에 들어 오는 그 놈만 괜찮으면 되지"라고 위로한다. 그 다음 멘트는 가히 엽기적이다. "하기야 식장에 데려 왔다고 그 녀석과 끝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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