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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신학] 지식인, 지성인, 영성인

Los Angeles

2012.12.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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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 목사
"저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의 크기를 말해줄 수 없다. 자신이 사는 우물이란 공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말이다. '지식'이란 이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옳다고 믿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식'의 한자어는 '識'인데 이 글자를 풀어보면 '언(言)'과 '음(音)'과 '과(戈)'가 서로 만나 형성되었다. 즉 '식(識)'이란 누군가 말소리를 밖으로 내뱉을 뿐인데 그 소리가 남에게는 창이 되어 꽂힐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자칫 '지식'이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외골수적 성격을 이름이다.

'외골수'는 뼛속까지 하나의 생각이나 사상에 몰입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지식인(知識人)들은 때로 변화에 적응할 줄 모르고 좌우를 분간하지도 않은 채 뼛속같이 몰입된 자신의 앎만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 말소리가 타인에게는 창과 같이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인이 많은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편견에 찬 알량한 지식으로 거짓 권력의 시녀 노릇한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들의 편협하고 맹목적인 지식은 창보다 더 잔인한 무기가 되어 한 사회를 도탄에 빠뜨리고 역사를 파탄 내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많아야 좋은 세상이 되겠는가? 지식을 활용하여 적절히 변화를 줄 수 있고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자신의 아집과 편견 속에 갇힌 지식이 아닌 열린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바르게 판단하여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을 '지성인(知性人)'이라 한다. '성(性)'은 '마음 심(心)'과 '날 생(生)'이 만나 형성된 글자로 그 뜻을 풀이해 보면 '갓 태어난 마음' 혹은 '날것과 같은 마음'을 뜻한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과 같은 마음이기에 어떤 지식을 넣느냐에 따라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은 변화이다. 그러므로 '성(性)'은 변화와 마음이 합쳐져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음'으로 풀이된다. 태어나 희미한 동굴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태양이 밝게 빛나는 동굴 바깥의 이야기를 전해준들 그들이 계몽되기 보다는 동굴의 평화를 깨는 거짓 사설(邪說)이라 하여 배척하고 말 것이다.

한낱 '지식'이 '지성'으로 변하려면 우선 자신의 앎을 깨뜨려야 한다. 이것을 '지각(知覺)'이라 한다. 여기서 '각'이란 '깨는 것'이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깨어 분별하다보면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사물의 도리를 깨닫고 선악을 분별하는 슬기로운 마음의 작용이다. 정리하면 '지식'을 '깨뜨려'(覺) '올바른 판단'(지혜)을 할 수 있어야 지성에 도달할 수 있다. 모든 사물과 상황을 분별하여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사람이 지성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성인이라 하더라도 '영성'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생기로 호흡할 수 없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었던 것(고린도전서 1:23)은 그들에게 '영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고린도전서 2:10). 지성인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땅의 이치는 깨달을지언정 하늘의 이치에서는 멀다. 21세기는 '영의 시대'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영이냐가 중요하다. 성령의 사람 영성인이 21세기를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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