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두돌의 남자아이가 자신의 아들로 오던 날, 부부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 자신들의 아이를 갖기 위해 온갖 것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였는데, 막상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니 아이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한층 더했다.
더군다나 아이가 경찰서 앞에 버려졌었고, 아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남아 있지 않아 신체발달상의 의료진단을 통해 아이의 나이가 추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아이에 대한 측은함이 더해 내자식처럼 잘 키워보겠다는 부부의 각오는 대단했다.
그러나 첫날 아이가 오던 날, 그 흥분과 감격은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는 아이가 자신들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배가 고파도 '울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입양기관에 많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만큼 손길도 적게 받았겠고, 그러다 보니 어린 나이에도 그런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졌나 보다 하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성장해가면서 반응없는 아이의 행동은 때로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발전해가고, 무어라 이야기를 해도 때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의사 소통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혹시 자폐증인가 해서 검사도 받아보고, 또 청각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검사와 진찰도 받아 보았지만, 어떤 무엇도 아이의 반응과 증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더욱 이상한 것은 아이가 네살쯤이던 어느날,, 아이와 함께 쇼핑을 하러 갔는데 아이가 갑자기 길거리의 간판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전에 전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또 네살의 나이에 맞지 않게 열살 아동들을 위한 책 수십권을 단 이주동안에 읽어치우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이었다.
아이가 혹시 '천재지능'을 타고 난 것은 아닌가 해서 지능검사도 받아 보았지만, 아이의 지능역시 극히 정상이였다.
무엇으로 아이의 행동을 설명할 것인가.
이미 일곱살의 나이가 된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상담실을 찾았을 때는, 아이가 정서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이가 보인 반응과 행동이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달랐고, 더군다나, 아이의 부모가 겪었던 것 같은 경험, 즉 아이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고. 몹시 파괴적인 행동으로 인해 실제 상담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이 이 아이와 세상을 단절하고 있는 걸까.
'학습장애'.
바로 여러가지 추가적인 검사와 행동관찰을 통해 내려진 진단이다.
일반적으로 학습장애는 장애부문별로 대별되는데, 읽기 학습장애, 수학학습장애, 쓰기장애 등 이 그것이다.
위의 아이가 겪고 있는 학습장애는 아주 특이한 경우로, 일종의 언어에 대한 이해장애(Hyperlexia)인데, 아이가 언어에 대해 천재적인 읽기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언어와 그 '의미'를 연결시키는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단어와 문장을 단어와 문장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의미'와 연결시킴으로써,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아이의 경우는 단어나 문장이 '의미' 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문자가 일종의 기호로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는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고,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지 전혀 학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장이나 단어를 그 의미와 연결시키지 못하는 전반적인 '언어이해학습장애'가 그와 세상을 단절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문자속에 갖혀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그의 좌절감이 과격한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당연하다.
아이와 세상을 단절시킨 것. 언어인식상의 학습장애.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언어와 그 의미를 연결시키는 반복적인 훈련이었다.
언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아이와 세상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반복적인 특수교육.
위 아이의 학습장애를 상담하면서, 때로 혹시 나와 세상간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는 것은 없는가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혹시 때로 나도 세상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언어인식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굳이 아이와 같은 학습장애가 아니더라도, 혹시 오늘 나를 세상과의 의사소통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그렇다면 내게도 어쩌면 아이에게 필요했던 그 반복적인 특수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김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