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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목회칼럼] 대강절-기다림의 절기

우리 시대의 문명을 단적으로 대변해줄 수 있는 말 중에 하나가 '스피드'가 아닌가 한다.세계 시장의 무대를 석권하기 위해서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누가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보다 더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오늘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스피드 시대에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에 있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답답한 일일 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 비해서 열등하다든가 혹은 저급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로 기다림은 지루함을 넘어서 무기력 함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림을 싫어한다. 이제 '빨리 빨리'는 더 이상 한국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인들의 기호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데는 보다 깊은 차원이 숨겨 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기다림의 결핍이란 단지 인내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리어 미래에 대한 확신의 부재요.자신에 대한 희망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어떤 것과 차단되어 있다면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다.

사실 우리의 삶은 현재보다도 내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기다림은 삶의 필수요.오아시스며 밑거름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현대인의 결핍을 기다림의 결핍으로 내다 본 프랑스 작가 피에르 쌍소는 주저인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속에서 기다림이야말로 다가오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느리게 사는 지혜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질적 차원임에 틀림이 없다.파스칼의 말대로 모든 불행의 원인은 여유를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일찍이 기다림의 미학을 신학적으로 문제 삼은 신학자 한 사람이 있어 주목된다. 태국 선교사로 활동하다 2009년 작고한 고수케 고야마는 주저인 '물소 신학' 속에서 한 시간에 5마일 밖에 가지 못하는 물소를 통해서 스피드에만 몰입해 있는 현대인들의 무지와 오류를 점잖게 꾸짖고 있다.

그는 신명기 8:2~3절을 인용하면서 물소 같이 더딘 느림보 하나님을 연상한다.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광야에서 연단하신 것은 단 하나의 교훈을 주기 위함이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40년간을 기다리며 교육하셨다는 것이 그것이다.

느림보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설혹 다른 길로 간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기다리셨으며, 끝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만일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지 않으셨다면 살아 남을 자가 과연 있겠는가?

기다림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적이며 완전하게 나타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성탄절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고 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조급함과 불신, 탐욕과 절망을 치유 받는 우리 모두의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김광원 웨스트그랜비 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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