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가 밤이 되면 유리창을 며칠째 두드리더니 날씨가 추워졌다. 12월 중순이니 추운 것이 당연하겠지만 추위와 함께 찾아온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세월이 참 쉽게도 가는구나' 하는 소리를 절로 나오게 한다. 또 한 해가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다.
밤비 소리를 들으며 멀리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괜한 걱정을 한다. 낮은 안개구름에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창밖은 밝은데 먼 기적소리가 고향에 있는 친구의 목소리가 되어 길게 흐른다. 밤을 달리는 사람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모두가 내일이 있어 오늘을 달리며 움직이고 있겠지.
이 세상에 태어나 65억 인구 중의 하나가 되어 우주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살아 있으니 더 바랄 일은 없다.
아무런 욕심도 없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도 확고한 철학이나 지식도 쌓지 못한 채 시중에 휩싸이며 어정쩡하게 살아와 내세울 것이라고는 늘어가는 나이뿐이라 아쉬움은 남는다.
다시 생각해보면서 이만하면 열심히 잘 살아온 것 아닌가 자위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인생 나그네 미국 나그네로 살아온 길 이제 겨울 나그네가 되어 외로움을 씹어 삼키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마음은 빗소리 타고 그리움처럼 달콤하게 퍼지며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비가 멎으면 산에 눈이 쌓이겠지. 날이 밝으면 가까운 산의 눈밭을 찾아가서 조그마한 눈사람 하나 만들어 놓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