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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생일에 대한 단상

San Francisco

2013.01.0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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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달력을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동그라미를 치는 일이다. 지인들의 생일을 잊어버리지 않게 크고 굵게 동그라미를 치는 일.

하도 아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한 달도 빼지않고 한두개씩 동그라미가 쳐진다. 이달에도 벌써 두개의 동그라미가 쳐졌다. 주위에서 말했다. 남의 생일까지 챙기려니 늘 그렇게 번잡하게 바쁘지.

우리 아버지는 동네의 잡다한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쫒아다니며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참 원망스러웠었다. 집안 식구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돈도 되지 않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요즘 내가 여자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남자였더라면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느끼기에 그렇다. 아버지처럼 온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참견을 하고 싶다. 그러나 여자라서 그럴 수 없으니 대신 주위사람들한테 여왕벌 노릇하는 걸로 만족한다.

여왕벌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주위 사람들의 생일을, 특히 여자들의 생일을 챙기는 일이다. 생일은 개인에 있어 가장 중대한 날이다. 본인이 여러가지 이유로 챙길 수 없으면 남이라도 알아서 차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일 두어달전부터 ‘내 탄신일(!)을 그냥 넘기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다니지만 조신하고 겸손한 게 미덕인 우리 한국여자들이 어디 그런가. 자녀나 남편이 모르면 혼자 조용히 넘기는 것이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축하해 주지 않는 생일. 생각만으로도 가슴 아프지 않은가.

얼마 전에는 W씨를 통해 알게 된 N씨의 생일에 여자들 몇명을 불러 같이 밥을 사주었다. N씨가 감격하며 말했다. 남으로부터 생일밥을 얻어먹은 건 미국온 지 30년만에 처음이라고. 그 말에 얼마나 코끝이 찡하던지.

최근에 친해진 한 1.5세 친구는 여지껏 부모로부터 생일상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삼촌들, 그리고 고모들까지 같이 사는 대가족이어서 어머니가 자녀들의 생일까지 신경써 챙겨줄 여유가 없었기에 그랬단다. 그런데 나중에 식구도 단촐해지고 형편이 충분히 되는데도 어머니는 자기들의 생일에 아예 무관심하다고 했다. 그 말을 아무렇지않게 웃으며 하는데 왜 그리 쓸쓸해 보이던지. 내 넓은 오지랍에 가만 있을 수 있나. 올해부터 주위사람들 모두 불러다가 그동안 얻어먹지 못한 생일까지 다 해 줄 테니 태어난 날짜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싫단다. 여지껏 그냥 넘긴 생일을 새삼스레 챙겨먹는 게 어색하고 쑥스러울 것 같다나.

우리 엄마는 궁색하고 쪼들리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매년 우리 생일을 잘 차려주었다. 콩기름 발라 잘 구운 김과 쇠고기가 들어 있던 미역국, 그리고 눈부시게 하얀 쌀밥이 있던 생일상을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별로 유복하지 않은 유년기였지만 기름지고 풍성했던 내 생일상은 따뜻하고 찬란한 기억의 한 조각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이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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