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시골 생활도 그 나름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딸과 아들이 올해 대학 졸업반이다. 딸은 서울에서 아들은 LA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딸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4학년까지 다니다 중퇴한 뒤 현재의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 조기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통상 봄학기를 끝으로 5~6월쯤 졸업하지만 아들은 학점 취득이 원활하지 못해 올 연말쯤이나 학업을 마칠 확률이 높다.올해 두 아이가 졸업반이 돼서 참으로 기쁘다. 재정부담이라는 멍에에서 마침내 홀가분하게 벗어날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아이들에게 대학진학을 전혀 강요하지 않았다. 아이 엄마의 경우 가능하다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각자의 소질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라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소의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모두 진학했다.
나이 오십이 돼서야 시골에 들어온 것은 거의 순전히 딸과 아들 교육 탓이었다.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서른 둘이 되던 어느 날 나는 시골에서 살 생각을 확고하게 굳힌 바 있다. 하지만 도저히 시골에서 교육비를 댈 자신이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며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골 수입으로는 교육비를 충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다.
서른 둘에서 오십이 될 때까지 약 18년 동안 나름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다. 시골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속병이 걸릴 지경이었다. 사실 나도 안다. 일반적인 혹은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아이들이 적어도 대학을 마칠 때쯤까지는 직장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지레 말라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내가 한계점에 이른 시점에 도시에서 발을 뺏다. 교육비와 생활비는 아파트를 처분해 충당하기로 하고 말이다. 2008년 아파트를 팔면서 통장에 넣어 둔 돈이 지난 4~5년 동안 죽죽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협조해서 올해 예상대로 학업을 끝낸다면 통장은 마이너스까지는 안 갈 것 같다. 하지만 혹시 내년으로 졸업이 넘어가면 뺄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일가 친척들은 나를 알만큼 알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남이 잦지 않은 친구들은 걱정을 앞세운다. 아이들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할 때까지는 부모가 어느 정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들을 한다. 아이 엄마는 내 친구들의 이런 생각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솔직히 나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지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복권이나 당첨된다면 모를까 어디서 없는 돈이 솟아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나라고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두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준 말이 있다. "너희들은 아빠 덕분에 절대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게다. 아빠하고 같이 농사를 지으면 되니까." 놀랍게도 딸은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요즘 동태를 보니 시골에 내려 올 일은 한동안 없을 모양이다. 아들은 애초부터 농사 지을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시골생활이나 농사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또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주 내려오는 딸에게는 시골생활의 장점을 은연 중에 자주 노출시키고 있다. 물론 그 생활이 땡볕 아래 목덜미가 시뻘겋게 변하는 고된 농부의 삶은 아니다. 딸이 인식하는 아빠의 시골생활은 대체로 여유로운 전원생활이다. 공기가 청정한 환경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 거리 온 몸으로 체감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운 변화 같은 것들이다.
제 힘으로 산다는 게 뭔지 충분히 알지 못할 나이니 아빠의 시골 생활을 낭만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속된 말로 피 터지는 취업경쟁을 거치고 도시 특유의 빡빡한 삶을 경험하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터이다. 산다는 게 본시 만만치 않은 일인걸 그래서 시골생활도 그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쯤이면 우리 아이들이 깨달을 수도 있겠다. 사는 건 취향과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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