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겸 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할리우드 상업주의에 반기를 들며 1985년 설립한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영화제. 매년 1월 미국 유타주의 작은 휴양도시 파크 시티에서 10일간 열린다. 선댄스라는 이름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1982년작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Sundance Kid)' 에서 따왔다.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로 대표되는 거대자본으로부터 벗어나 소자본과 실험적 작가정신을 시도하는 젊은 영화인들의 축제로 이름높다.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유럽의 유명 영화제에 비해 한국에선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미국 영화산업과의 교류와 할리우드 진출을 위한 선댄스의 역할과 중요성이 대두되며 올해 처음으로 선댄스 필름페스티벌에서 '한국 영화의 밤'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경민 기자
미래 영화계 책임질 영화인 한자리 젊음·열기 가득한 축제의 장 박찬욱 감독 '스토커' 관심 후끈
미국 최대의 영화 축제. 내일의 영화계를 책임질 재능있는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 배우 감독 제작자 작가 평론가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데 어울려 영화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을 세계 각국의 어떤 영화제보다도 젊음과 열기가 가득한 축제의 장으로 유명하다.
2013년 선댄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고무돼 있었다. 지난해 선댄스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Beast of the Southern Wild)'가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기록하자 또 다른 '선댄스의 기적'을 꿈꾸는 영화인들의 의욕과 패기가 한껏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특히나 극영화 경쟁부문엔 흥미로운 작품들이 대거 몰렸다. 레즈비언 성매매라는 다소 자극적일 수도 있는 소재를 차분하고도 깊이 있게 다룬 영화 '콘커션(Concussion)' 지난 2009년 경찰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흑인 청년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다룬 영화 '프루트베일(Fruitvale)'은 상영 직후 이어진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웨인스타인 컴퍼니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대니얼 레드클리프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은 소니 클래식에 샤일린 우들리 주연으로 10대의 사랑과 우정을 표현한 '스펙타큘러 나우(The Spectacular Now)'는 신생 배급사인 A24에 판권을 넘기며 선댄스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영화제의 위상과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신인감독이나 저예산 독립영화 뿐 아니라 톱스타가 출연한 스튜디오 영화들도 줄줄이 선댄스를 찾았다. 특히나 올 하반기 개봉될 할리우드 기대작을 선공개하는 프리미어 섹션은 무척이나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Stoker)'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화제작이었다. 박 감독과 함께 프리미어 현장을 찾은 니콜 키드만이 올해 선댄스 최고의 스타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감독 데뷔작인 '돈 존스 어딕션(Don Jon's Addiction)'과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비포 선셋(Before Sunset)'시리즈의 완결판인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은 영화제 초반을 뒤흔든 인기작이었다. 반면 애쉬튼 커처를 주연으로 내세워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 '잡스(jOBS)'와 이혼한 부부의 자녀가 왜곡된 자아상을 가진 채 커 나가는 과정을 경쾌하게 그린 작품 'A.C.O.D.'는 영화제 후반 관객몰이를 책임졌다.
다큐멘터리 부문에서도 화제작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흥미로운 인물이나 사회 현상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시의성 있는 작품이 여럿 출품된 덕이다.
오사바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큰 공을 세웠던 여성 CIA 요원들을 기록한 '맨헌트(Manhunt)'나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과 사실을 다룬 '스토리 오브 위키리크스(We Steal Secrets: The Story of WikiLeaks)'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딕 체니 전 부통령을 분석한 '월드 어코딩 투 딕 체니(The World According to Dick Cheney)'등은 상영회마다 티켓 매진 사례를 기록해 각 소재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증명했다. 지난해 NBA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대만계 농구선수 제레미 린의 이야기를 다룬 '린새니티(Linsanity)'역시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끈 2013 선댄스의 히트작이다.
사실 선댄스는 이처럼 매년 규모를 키우고 성장해 나갈수록 심한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영화제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영화의 장을 지향하며 시작됐기에 갈수록 상업화되어가며 그 본질을 잃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제의 설립자이자 '선댄스 스피릿' 그 자체인 로버트 레드포드는 올해 선댄스 개막 기자회견에서 단번에 이 모든 우려를 명쾌히 불식시켰다. "선댄스는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성을 추구한다. 오늘날의 선댄스는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성이 상업성까지 겸비했음을 증명해주는 축제일 뿐이다." 다양성과 상업성이 만난 2013년의 선댄스. 거기에 할리우드의 미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