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가 온통 박찬욱 얘기 뿐이다. 중반으로 접어 든 2013년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의 모든 화제는 박찬욱 감독의 첫 영어 영화인 '스토커(Stoker)'로 모아졌다. 21일 열린 월드 프리미어에 이어 22일 열린 상영회까지 그 열기가 이어지며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드디어 베일을 벗은 '스토커'는 관객과 평단 모두를 완벽하게 매료시켰다. 영화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에블린(이비.니콜 키드만)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모녀와 아버지 장례식장에 갑작스레 나타난 삼촌 찰리(매튜 굿)의 이야기다. 단순하면서도 겹겹이 층을 이루며 심도를 더해가는 강렬한 이야기 구조는 98분의 러닝타임 동안 객석을 무섭도록 파고들었다. 놀랍도록 치밀하게 디자인된 영상과 사운드는 비밀스러운 캐릭터들과 더해지며 섬뜩한 긴장감과 서늘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엄마와 딸 삼촌의 불편하고도 팽팽한 삼각관계는 한 특별한 소녀의 기괴한 성장 스토리로 승화되며 박찬욱 영화세계의 찬란함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가디언 등 유력 외신들은 경외에 가까운 찬사를 쏟아냈고 영화계 관계자들은 박찬욱 감독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가리지 않고 그의 뒤를 쫓았다.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은 남은 세차례의 '스토커' 상영 티켓을 구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완벽한 성공이다. 월드 프리미어를 마친 직후인 22일 박찬욱 감독과 마주 앉았다.
-월드 프리미어를 마쳤다. 소감은.
"완성한지 7개월 만이다. 다 만든 영화를 이렇게 오래 묵혀둔 게 처음이라 마치 소화가 안된 것처럼 길고 지루했는데 마침내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물론 반응이 좋으니 기분도 좋다."
-관객과 함께 영화를 관람해 보니 어땠나.
"그 동안 한국어로 만든 영화를 외국 관객이 보면 무서운 장면 등에선 모두가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지만 유머에 있어서만은 문화 장벽을 넘기가 어려워 위트있는 표현에서도 웃지 않는 경우가 있어 속상했는데 이번엔 영어로 만든 영화라 그런지 의도한 부분에서 다 웃는 관객을 보는게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주요 매체들의 리뷰가 극찬 일색이다.
"대충 요약해서 듣기만 했다. 프로듀서가 버라이어티에 나온 리뷰는 액자로 걸어놔도 좋을 정도라고 하더라. 의도했던바를 모두 잘 잡아낸 것 같다. 촬영에 있어 그레고리 크렛슨까지 언급한 것 보고 꽤나 놀랐다."
-배우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다들 굉장히 흥분했다. 한 프로듀서가 앞으로 영화 역사에서 샤워 장면 논하려면 '싸이코'보다 '스토커'를 먼저 연상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미아가 정말 좋아했다. 노출도 있고 해서 본인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을텐데 큰 보상이 된 듯 하다."
-영화 속 등장하는 다양한 사운드의 효과가 대단하다.
"늘 해오던 대로 했는데 전작들에 비해 구성이 단순하고 인물이나 장소도 조용한 편이다 보니 내가 디자인해 넣은 사운드가 관객들에게 더 잘 느껴진 것 같다."
-영화 속 드러나는 히치콕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다.
"당연히 히치콕의 '의혹의 그림자'의 영향을 받았다. 웬트워스가 썼던 각본에서부터 그랬다. 주인공 이름이 '엉클 찰리'이니 말할 나위가 없지 않나. 한 때는 그런데서 벗어나고 싶어 찰리의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했던 적도 있다. 의도적으로 내 연출에 히치콕스러운 것들을 집어넣으려고 애쓰지는 않았지만 원래 각본에 있는 것을 지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니 '의혹의 그림자'뿐 아니라 '싸이코'의 영향도 분명 있는 것 같다. 매튜의 모습에서 앤서니 퍼킨스가 생각나기도 한다. 나를 감독의 길로 이끌어준 히치콕이란 감독의 영향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배우 매튜 굿의 발견이 놀랍다.
"처음 영상통화를 길게 대화할때부터 이미 그에 대한 많은 것을 발견했었다. 실제 성격은 아주 까불고 웃긴 친구다. 미아가 매튜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촬영을 못하고 수십번씩 다시 찍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언뜻언뜻 발견되는 무엇이 있다. 순간순간 발견하게 되는 싸늘한 느낌 뭔가 속마음을 감추고 짓는 듯한 미소 공허한 눈빛 등은 모두 매튜 본인의 모습에서 발견된 것이다. 다른 배우였다면 다른 식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스토커'가 전작들과 비교해 같은 점 혹은 다른 점이 있다면.
"잘 다듬어진 세공된 느낌은 전작들과 비슷한 것 같다. 거친 붓으로 일필휘지하듯 슥슥 멋있게 그린듯한 영화가 아니라 가느다란 붓으로 하나하나 칠한 그림같은 영화라는 점이 그렇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들은 선한 사람이 윤리적인 고민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스토커'는 선악이 모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 다른 듯 하다."
-기대하고 있는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미국 관객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 한국 관객에게는 더 쉬울 것이다. 내 영화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겁 먹을 필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