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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스와니 강물 따라

New York

2013.01.2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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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2학년으로 기억된다. 음악시간에 키가 자그마한 여선생님이 들어왔다. 사춘기인 우리는 예쁜 여선생님을 보자마자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은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음악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들어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곧 냉정을 회복하고 피아노를 치면서 고운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스와니강의 노래'였다. 아이들은 조용해졌고 선생님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머나먼 저 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던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머나먼 옛 고향.'

'스와니강'은 애수가 깃든 망향의 노래였다. 음치에 가까운 나도 가사가 생각날 정도로 노래는 부르기 쉬우면서도 슬펐다. 가사 중에는 '어느 나라 다녀도 세상은 슬프다'라는 노랫말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1월 중순 스와니강을 다녀왔다. 뉴욕에서 왕복 2500마일의 먼 거리였다. 95번 하이웨이를 타고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남쪽에서 85번을 갈아타고 애틀란타로 내려갔다. 여기서 75번을 타고 6시간을 달려 플로리다주 경계 거의 다 가서 117번 하이웨이를 70마일 가면 파고(Fargo)라는 조지아주의 시골이 나온다. 여기가 스와니강의 발원지다.

1월의 스와니강은 한산했다. 몸이 집채만 한 여인이 특유의 남부 억양으로 낯선 아시안을 맞았다. 나는 노트에 메모를 하면서 심각하게 강에 대해서 물었다. 스와니강(Suwannee River)은 조지아 서남부 근처 오키네노피 늪에서 발원, 플로리다를 거처 멕시코만 바다로 빠지는 길이 250마일의 강이다.

이 강은 수심이 깊지 않고, 강폭이 좁아 증기선은 다닐 수 없고 작은 보트나 카누를 타고 다녀야 한다. 나는 마이클이라는, 뉴욕을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는 젊은이의 안내를 받아 1시간 반 동안 강물을 따라갔다. 물위에 떠있는 사이프러는 밑둥치가 옛날 미국 여자들이 입던 주름치마 같았다. 700년 된 구멍이 숭숭한 나무도 있었다.

스와니 강가에는 사슴, 사자, 악어들이 서식하고, 학이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요즘은 비수기라 사람이 없지만 2월부터 봄방학이 시작되면 단체 자연탐사가 많다고 한다. 밤에 플래시를 들고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가다가 일정한 지점에 멈추어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스와니강 노래는 1851년 스티븐 포스터 작사, 작곡의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센터에 있는 포스터 노래집을 펼쳐봤다. 100곡이 넘는 노래 중의 하나인데 'Edwin Pearce Christy' 작사, 작곡으로 되어 있었다. 이 노래는 흑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렀던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당시 백인들도 애창했다고 한다. 노래의 원제목은 'Old Folk's Home'으로 스와니강과 큰 연관이 없다.

스와니 강가에는 오래 전 시니올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백인들에게 잡혀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강 늪지대에 살았다고 한다. 스와니강 노래가 만들어진 시대에는 조지아에 흑인노예들이 잡혀와 목화와 담배를 재배했는데 이들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사람은 떠나도 강은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있다. 인디언들은 백인의 총에 맞아 죽거나 미국사회에 동화되었고, 백인의 채찍에 맞으며 목화를 재배했던 흑인노예들은 해방되어 북부의 도시로 몰려가기도 하고 남부에 그냥 주저앉아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강은 지형만 형성하는 것이 아니다. 강 유역에 온갖 곡식을 재배하도록 하고, 야생동물을 서식시킨다. 스와니 강은 늪 사이를 흐르는 흙물이지만 오염되지 않았다. 강 주변에 공장도 없고, 인간의 땀 냄새가 많이 배여 있지도 않다.

스와니강은 맑은 물은 아니다. 카누를 타고 좁은 강의 골목에 들어서면 아직도 인디언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고, 흑인 노예의 슬픈 노래가 원시의 바람에 전해지는 곳이다. 스와니강은 크지 않고 깊지 않지만 전설이 흐르는 애수의 강이다.


최복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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