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저는 앤드류 안인데요 우리 아버지 가게를 소개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한국어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거듭 말하는 청년의 목소리는 밝고 힘이 있었다. 어눌한 한국어 발음이었지만 성의를 다하는 목소리는 금방 호감을 느끼게 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하던 "우리 부모님은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지붕이 뾰족한 삼각형인 '필리 치즈 스테이크' 가게는 작은 도로 변의 길 모퉁이에 있었다. 매장에 들어섰을 땐 온 식구가 한창 재료 준비에 바빴다. 가게는 작았고 몇 개의 테이블이 올망졸망 놓여 있었다. "저희 가게가 좀 초라하죠? 그냥 한국식 순대국 집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허허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주인장의 인사가 털털하게 느껴졌다.
영화 프로듀서인 아들의 권유로 LA로 이주한 지는 1년 반 정도 되었고 이민 와서 30년 동안을 필라델피아에 뿌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 동안 주인장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십여 종이 넘는 비즈니스로 인생의 고개를 넘어왔다. 돈을 펑펑 벌 때도 있었지만 결국 필라델피아를 떠날 때 마지막 사업을 정리하고 빈 손인 채 LA 땅을 밟았다. 극작가로도 활동하는 그의 딸이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그리고 오빠와 나는 집 안의 가장이 되기를 자청했다. 내 친구들은 나의 기꺼운 희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민자로서의 내 부모의 삶과 함께하며 현재의 상황을 내가 쓰는 시트콤처럼 즐겁게 받아들인다. 나는 몇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해야 하지만 늘 낙천적이고 한 번도 인생을 포기한 적 없는 아빠의 꿈을 존중한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의 주인장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두 손에 쥔 재물은 잃었지만 '함께'라는 귀한 의미를 알고 있는 아들과 딸을 두었으니 정말 부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뜨거운 철판에 고기를 굽는 주인장의 어깨가 들썩들썩 신이 나는가 보다. 처음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호탕하게 말했다. "난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봤지만 단 한 번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게 유일한 유산이죠." 한참 후에 아버지가 철판 앞으로 돌아간 뒤 아들이 한 말 "나는 독립 영화 만드는 일을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내 꿈의 의미를 거기에 담으니까요."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알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꿈의 열정이 서로 똑 닮았다는 것을.
필리의 치즈와 고기 맛 그대로
오바마 대통령도 단골이라고 할 만큼 치즈 스테이크는 필라델피아의 명물이다. 원래 핫도그를 만들어 팔다가 스테이크를 썰어 넣고 치즈를 듬뿍 뿌리는 모양으로 변형됐다. 필라델피아는 워낙 질 좋은 치즈 생산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치즈 스테이크의 맛도 고소한 풍미를 자랑한다. 하지만 비교적 열량이 높기 때문에 건강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쩌다 한 번 입 맛이 당길 때 먹으면 그것도 별미다.
친근한 외할머니의 성을 따서 이름 붙인 '부스 치즈 스테이크'(Boo's Philly Cheese Steaks)는 원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빵과 고기를 필라델피아에서 직접 공수한다. 가장 기본적인 메뉴인 치즈 스테이크는 기다란 빵에 고기와 양파를 잘게 썰어 철판에 볶아내어 얹는다. 그리고 그 위에 식성에 따라 치즈를 듬뿍 끼얹는다.
가격에 비해 양도 푸짐하고 한 입 베어 물면 짜지 않고 간이 딱 맞는다. 한국인들은 LA 음식의 짠 맛에 매우 민감하므로 치즈 스테이크를 짜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안 호기가 입에 딱 맞는다. 바삭한 빵과 두툼한 훈제 돼지고기 어깨살 그리고 보기만 해도 색깔이 선명하고 싱싱한 채소들이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다. 허브향이 가득한 이탈리안 소스가 잘 어우러진다. 거리 음식으로 폄하하기에는 매우 고급스런 샌드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