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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론]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

New York

2013.03.0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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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필자가 대학 입학식 때 총장 축사의 주제는 '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이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노학자 출신의 총장은 햇병아리인 우리에게 지성 못지 않게 야성도 겸비하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당시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다.

열심히 와일드 해지기 위해서 그저 막걸리만 마신 기억 밖에 없다. 허기야 데모로 점철되었던 나의 학창시절에 공부란 허울좋은 껍데기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시경제학 강의 시간에 배운 케인즈의 '노동임금의 하방경직성(Downward rigidity)' 논리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유시장 경제논리에 따르면, 노동의 수요와 공급 원리에 의해 임금이 낮아지면 자동적으로 균형을 이룰 줄 알았지만 인간심리(Psychology)의 움직임을 적용해보면 결과가 다르다.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일자리가 남아돌면 노동의 공급가격이 떨어져야 하지만, 사람은 지금 받던 급여보다 더 떨어진 상황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임금의 하방경직성 논리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논리를 고전학파가 무시했는지 아니면 몰랐는지 모르지만, 인간이 지닌 또 하나의 다른 측면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고 케인즈는 불렀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불안정성(instability)을 설명하는 이론인줄은 훨씬 뒤에야 알았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고전파 경제학의 핵심논리인 것처럼 '야성적 충동'은 케인즈의 핵심논리인 셈이다.

2008년 월가의 금융위기 후, 위기 원인을 진단하거나 발생경로 혹은 재발방지 정책을 제시하는 책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아주 돋보이는 책 한 권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와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 UC버클리 교수가 쓴 '야성적 충동'을 반복해서 읽었다.

1936년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미국의 대공황을 벗어나게 만드는 유효수요 창출 정책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가 주장한 핵심 메시지는 바로 '야성적 충동'이다. 그는 경제의 운영원리와 그 운영 체제 안에서 정부가 취해야 할 역할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케인즈 이전 고전학파 논리에 따르면, 정부 개입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유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으로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노동자가 자신이 기여하는 노동생산 몫보다 적은 보수를 받고 일할 의지가 있다면, 사용자는 기꺼이 일자리를 제공하고 또한 수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고용문제는 자동해결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이라는 현실은 고전학파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고전학파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재정균형과 정부규제 최소화를 주장하고 있었으므로 갑자기 발생한 주가 폭락과 높은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케인즈는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에 따라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케인즈는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합리적인 경제동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비합리적인 '야성적 충동' 영향도 상당히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사람들은 비경제적인 동기를 갖고 있으며, 그 동기는 언제나 합리적인 경제이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인간의 심리적인 요인을 파악하고 있었다.

케인즈에 따르면, '야성적 충동'은 자본주의 체제가 반복하고 있는 경기순환과 비자발적 실업의 주된 요인으로 본다. 따라서 정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 수단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인즈는 사람 내면에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이성을 자극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뭔가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이성적인 인과법칙이 존재하는 신비스러운 것이 바로 '야성적 충동'이라고 봤다. 요약하면 경제학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놀랄 만큼 많이 있다.

인간의 '야성적 충동'에 따라 경제가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즈의 주장을 살펴보자. 지금 미국에는 정부의 시장개입 내지 큰정부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자유시장경제 옹호론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현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이데올로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케인즈의 주장처럼 정부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다만 강도가 어느 정도이냐의 논쟁은 있을 수 있다. 만약 지나치게 자식에게 권위적으로 대하면 자식이 반발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식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자식을 망치게 된다. 바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처럼 시장개입이라는 문제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에겐 지식을 넘어선 지혜가 있다. 지혜는 해답을 준다.

수십 년 전 총장의 입학식 축사를 지금 이 순간 새겨보면, 인간이 지닌 야성이 인간의 미래를 밝게도 하고 망치기도 한다. 야성을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 동력으로 삼는다면 결코 우리 사회에 해악을 주는 것만도 아니다.


오명호 HS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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