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거울 앞에서
황명숙 / 재미수필문학가협회회원
대중성과 일률성을 피해 나만의 독자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갈망은 가슴 속을 헤매이다 스러지고 부모와 가족 자식 직장 남들을 위해 일한 긴 세월과 결실만이 드러난다. 필경 사회에 대의명분을 내세웠던 일의 가시적인 성과만이 흔적을 남기고 나라는 존재는 아예 이름도 없이 묻혀질 것이다.
남들과 나에 대한 얘기의 시작은 어머니로부터였다. 자기 찾기에 한창 여념이 없던 사춘기에 어머니와 자주 부딪쳤었다. 남들이야 뭐라든 내 취향과 자율성을 고집하는 주장에 맞서 어머니는 세상을 원만하게 보람되게 살려면 늘 남들을 의식해야 하는 필요성을 납득시키려 애쓰셨다.
시대나 사회 대중과의 유대감을 떠나서의 개인이란 독불장군일 뿐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의미밖에 없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당신이 늘 입고 계신 한복을 예로 들어 대중이 유행을 따르는 이유를 쉽게 설명하셨다.
"사람들이 한복에 왜 동정을 달고 깃과 섶 끝동을 구태여 구분해서 바느질을 하겠니? 목의 때 타는 동정이야 깨끗하게 갈기 위해서라지만 왜 옷고름의 길이가 일정해야 하고 깃이니 섶이니 마름질 하노라 어려운 수고를 하겠니?"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집안에서는 허름한 옷을 입다가도 외출이나 모임을 위해서는 반반한 옷가지로 갈아입는 것도 좋게 말하면 때와 장소를 가려서 타인을 위하는 배려 때문이라셨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치마 기장을 길고 짧게 또는 바지 통을 넓고 좁게 만드는 것도 사실 소비자를 겨냥한 유행의 바람을 타서다. 소비자들의 시선이 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있음을 말해 준다.
성인이 되어서야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신 타인의 시선이란 것이 단지 옷이나 몸단장 소지품의 유행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교육적이거나 사회적 대아적인 사고 또는 공동의식 동참이라는 연대성이 타인을 위한 배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보람있는 결과를 이룬다는 삶의 공식 인간 관계의 원칙 사회적인 사명감을 어머니는 가르치셨던 것이다.
처음 취직을 하고서 직장이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장려하고 사회적인 도리와 본분을 다 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유행의 개념과 어느 정도 통한다는 해석을 했었다. 직장 생활 연륜이 길어지면서는 직장의 통제와 집단 의식이 결과적으로는 개인에게 사회에 적응하는 척도를 가르치고 자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게 이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그 긍정적인 동력에 동화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하기야 수필 한 편을 쓰는 일에도 공인으로서의 입장을 문제삼지 않는가. 개인의 이야기인 수필이 전 인류적인 것 우리의 이야기로 확대되어야지만 신변잡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평론가의 일침이 곧 문학의 사회적인 책임과 삶의 가치를 암시하고 있다.
은퇴를 하면서 홀가분한 기분이었던 걸 기억한다. 벌써 여러 해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생활을 한다.
하루를 살다보면 한 달이 되고 한달을 살고나면 일년이 되는 그런 느긋함에 익숙하다 보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다거나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를 물어 점점 희박해지는 사회성을 고민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어차피 사회적인 의무에서 풀려났으니 은퇴하고부터는 평생 일해온 '위해서'의 대상이 남들이 아닌 나 자신으로 바뀌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않겠나.
거울을 본다. 거울에 비춰진 나를 본다. 이제는 남들에게 인식되는 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외출의 기회가 줄고 그만큼 보고 듣는 것도 적어져서 생활이 저절로 단순해진다.
공연한 생각에 집착하거나 근심 걱정 후회에 빠져드는 일도 없다. 한가한 시선으로 새로워지는 나를 드려다 보면서 늙음과 지혜 고독과 침묵의 상관성을 발견한다. 노쇠가 노인 특유의 편안함과 자유를 누리게 할 줄 어느 누가 예상이나 했었겠나. 일할만큼 일한 나이의 사람들에게 억울하지 말라고 덤으로 주어지는 특혜이려나.
거울을 본다. 흰 머리나 얼굴의 주름 같은 겉모양에는 무심한 채 나의 본질을 제대로 보기 위한 훈련을 한다.
맑고 밝은 거울 앞에서 고요와 평화를 마음에 담는 연습을 한다. 더 나이들면 나를 향한 시선마저 흐려질 터인즉 너무 늦기 전에 마음 비우는 연습을 하고 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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