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고난주간보다 더 중요한 것
고난주간은 의미상으로 모순의 기간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두고 '죽음'과 '부활'이란 상반된 단어가 공존하니까요.기독교는 이 시간을 매우 특별하게 보냅니다. 지난주 대다수의 한인 교회들이 고난주간을 맞아 특별새벽기도회 대형 음악회 커뮤니티 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경건'이 강조됩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갑자기 인터넷 사용을 줄이거나 TV를 안 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금식도 하고 행동거지나 말투까지 조심하면서 금욕적 생활을 추구합니다. 기독교인들의 SNS에는 고난주간과 관련된 글이나 찬양 성경구절의 출현이 갑자기 잦아지기도 하죠. 이는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보고 예수가 받은 고난에 함께 동참하겠다는 기독교인의 순수한 표현일 겁니다.
그만큼 예수의 십자가가 기독교에 주는 의미 또는 은혜가 중요해서일까요. 유독 고난주간만 되면 너무나 특별하게 묵상 되는 십자가의 의미가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는 달리 보면 예수의 십자가는 그만큼 평범한 의미가 됐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고난주간처럼 특정 절기나 돼야 한번쯤 되새겨볼 수 있는 묵상의 동기가 부여될 뿐 평소에는 체감이 잘 안 된다는 거겠죠.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를 '복음(복된 소식)'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만큼 중요한 핵심이라면 예수의 십자가 의미는 특별하게 되새길 정도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최우선 가치여야 합니다.
진지하게 자문해봅시다. 평소에도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묵상 되십니까. 예수는 왜 죽어야만 했고 그 사실이 '나'와 도대체 어떠한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 말입니다.
만약 일상에서 좀처럼 체감되지 않는 이야기 같다면 왜 그런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약 누군가 기독교 복음에 대해 질문한다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당연한 교리적 이론처럼 답하는 무미건조한 내 모습이 보이지는 않나요.
일상을 천천히 돌아봅시다. 너무나 진부해진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는 오늘날 특별한 시즌에 교회의 독려나 행위적 동참이 아니면 감흥 없는 의미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보다 오히려 일상에서 '나'를 위해 신에게 빌었다가 얻어내는 한시적 응답의 기쁨이 훨씬 더 피부에 와닿을 겁니다.
고난주간이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됐다면 다행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의미가 매일의 삶에 묵상되어지고 녹아드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만약 잘 안 된다면 그 의미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나'를 고민해 봅시다.
절기를 특별하게 지키려는 몸부림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