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풍수] 풍수의 출발
부동산 전문 버나드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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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국인은 풍수(風水)라는 용어가 꼭 바람(wind)과 물(water)로 번역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으로 번역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한국인이 아닌 타인종에게 있어서 자연을 보는 인식은 우리와는 사뭇 다를 겄입니다. 고대 시대로부터 많은 서구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지만 동양문화의 황하(黃河)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풍수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을 합니다.
자연에 대립하지 않는 순응 그리고 자연과 함께 이루는 조화, 그 지혜가 바로 풍수인 것입니다.
풍수라는 말이 언제부터 생겨는지 또는 그 말의 순수한 어원은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풍수라는 말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동양인들은 자연풍토에 순응해야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 지혜를 생활속에 응용해야 한다는것들 이미 알았으리라 짐작 합니다.
우리는 학교때부터 중국의 상형문자가 5000년 전에생겨났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상형문자象形文字)가 생겨나기 훨씬 전에 중국인들은 효(爻)라고 하는 표기문자(表記文字)를 사용하면서 하늘이라든가 땅 등의 자연현상을 표현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또한 역사에서 말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천년 전 부터 하늘(天)땅(地)사람(人)이 하나라고 하는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체계가 이미 잡혀있었습니다. 삼위일체 사상 역시 자연과의 조화 입니다. 이렇게 동양의 역사 속에서 자연이란 인간과 함께 가는 운명체 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동양의 풍수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하고, 순응하기 위한 겸허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풍수는 기(氣)를 논하는것 입니다.
아주 먼 옛날 상고시대(上古時代)때부터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중국인들은 살기 위해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를 찿아야만 했습니다.
그중에 또한나로 그들은 끊임없이 “우주만물에 대한 현상을 관찰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주만물이 움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고. 그것을 바로 “기(氣)”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기(氣)라는 것은 우주가 생성되는 구성요소이고, 우주만물의 모든 변형도 바로 기(氣)의 작용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알아낸 우주의 구성요소가 “원자”라면 동양인이 알아낸 것은 “기”가 되는 것 입니다. “원자”라는 것은 분리가 가능한 최소한의 단위이지만 “기(氣)”는 쪼개어 낼 수 없이 흐르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어떤 한 부분에서 전체를 파악하려고 하지만 동양에서는 나눌 수 없는 전체, 즉 “움직이는 흐름” 안에서 상태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 하는 유기체사상(有機體思想)이 되는것 입니다.
우주는 음(陰)의 기(氣)와 양(陽)의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은 남성이고 음은 여성이다. 양과 음은 각각 하늘과 땅, 해와 달,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등 항상 상반 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양과 음은 같은 것이면서도 다른 것이 있고, 다른 것 가운데 같은 것이 있으며 좋은 것 가운데 나쁜 것이 있고 나쁜 것 가운데 좋은 것이 있습니다.
음과 양은 분리되지 않는 하나이면서도, 두 개로 분리 할 수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낮과 밤은 음양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분리가 되지만 봄, 여름,가을, 겨울과 같은 사계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또 음양의 변화와 동시에 사물과 사물간에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사물간의 관계를 관찰하여 기질(氣質)별로 분리 해 놓은 것이 “오행”이라고 불리우는 목,화,토,금,수(木花土金水)인데, 이 오행도 각각의 음과 양이 있고 서로 상존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음양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고, 오행이 상생을 하거나, 상극하는 것은 또 하나의 사물이 발전하는 동기가 된다는 이치인데,이것을 음양오행(陰陽五行)라고 부르는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분해하는 “음양오행이 춘추전국시대에 정립되었다”거나 “한나라때 정립되었다”는 그것이 주역(周易)에 실려있던 어디에 적혀있던 그 때와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음양오행설이 정립되면서 동양인들에게 하늘과 땅의 만물을 창조하는것도, 자연현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도 그 근원(根源)이 흐르는 기의 작용이라는 것을 논리화시켰다는 것이 중요 합니다.
논리화 된 음양오행의 기(氣)를 의학, 예술,지리,인성.... 등 모든분야에 걸쳐 작용을 시키게 됩니다.
동양의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경락(經絡)을 타고 그 사람의 “기”의 상태를 말하게 되고, 기공(氣功)은 몸이 지니고 있는 기를 조절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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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서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이란 무어인가?
땅은 지구상의 모든 것을 생성시키는 원래의 근원 자체 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생성시키는 것은 땅속에 있는 기(氣)의 작용인 것 입니다.
"음양의 기가 합치면 바람이 불고, 이 기가 하늘로 이르면 구름이 생성이 되고, 이렇듯 하늘로 오른 기가 내려 올때면 비의 모습으로 변하여 다시 땅속으로 스며 들게 됩니다.
이것이 풍수고서인 “청낭경”에서 나오는 한 구절로서 바로 이 글귀에서 “기”와 “풍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땅속에 있는 기우니 생명력을 가질 때 이것을 생기(生氣)라고 하는데,
땅속에는 생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습니다. 이 생기는 우주만물의 구성원의 하나인 우리와도 연결 됩니다. 생기가 있는 땅을 찾는 방법이 풍수의 이론과 논리가 된 것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자는 것이 풍수의 목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기가 경락을 타고 흐른다면 땅속의 기는 산맥(山脈)과 수맥(水脈)을 타고 흐르게 되겠죠. 한의사가 경락을 살펴보고, 한 사람의 기를 살핀다면, 풍수는 산줄기와 물줄기를 보고 기의 상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두가지가 서로 모아지기도 하고 상반된 길을 가기도 합니다.
그원리를 바탕으로 나침반을 발명 하게 되었고, 밤 하늘에 쩌있는 달의 차고 기우는 사이에는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이라는 간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풍수가 미신으로 비추어 지는가
일기(日氣)예보를 보고 듣고, 직장에 나가면 분위기(氣)를 살피고, 상사의 기품(氣)이 어떻고, 내 기분(氣)이 좋지 않아 사기(氣)가 떨어지고, 기(氣)가 차고... 생활속에서 기(氣)가 나오는 곳은 너무나도 많은데, 풍수얘기를 하면 무지한 관습처럼 느껴지는 것이 또한 오늘날의 우리들 입니다.
초등학교 어린 학생도, 대학의 지성인도, 무슨산, 무슨산의 정기(精氣)를 받았다노라며 목청높여 교가(校歌)를 부르면서도, 막상 기(氣)를 설명하거나 풍수라는 말을 하면 표정부터가 바뀌어집니다. 왜일까요?
동양인들 또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식 과학이란 것에 훈련되고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서구식 시각에서 벗어난 것은, 과학적인것에서 벗어난다면 왠지 믿기 힘들다는것이 우리 사상에 들어 와 있는 것 같습니다.
2000년 전 서양인들이 "지구는 원자라는 것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라고 상상하고 있을 때, 동양 사람인들은 5000년 전에 이미 태극(太極)의 음양설로 우주의 이치를 논 하였고, 지구에는 火, 水, 木, 金, 土즉 불, 물, 나무, 쇠, 흙으로 되어있다고 세분하였고, 동, 서, 남, 북에서 방위 감각까지 터득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설명하는 바이오리듬이란 것은 하나의 생명체를 움직이는 힘을 에너지의 파장(波長)이라고 부릅니다. 이 에너지의 파장이란 이미 동양인들이 우주만물의 이치와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파악해놓은 기(氣)의 원리라고 생각 됩니다.
서양인들이 자기장의 현상이 어떻고 에너지의 이동법칙이 어떻고 하면, 그것은 과학이 되는 것이고, 동양 철학에서 기(氣)의 흐름, 기(氣)의 상태등을 말 하면 과학이 아니 미신이나 무지에서 나오는것 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하나의 물건을 쪼개어 들여다 보고, 무어인가를 증명하는 것 입니다. 반면에 동양의 철학은 쪼개서 들여다 보지를 않습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과학이 동양에서는 이미 철학 속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부분과 전체를 하나로 묶어 그 실체를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바로 “유기체”사상이라는 것 입니다.
과학자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기(氣)는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분들에게 기(氣)는 신비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과학이 아닌 신비가 우리에게 미신으로 보이거나 느껴지게 된 것 입니다.
과학이 눈부신 물질문명을 가져다 준것은 아무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2000년이나 되는 기독교의 역사 그 자체로도 인정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풍수역사 6000년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오래전부터 서양에서는 지구의 생성 원리를 놓고 두개의 파가 생겨나고 많은 다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두개의 학파로 나뉘어 지금까지도 맏서고 있는데, 바로 “창조론”과 “진화론”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였나니..., 믿습니까?”
“굳게 믿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의 창조론 입니다.
도 다른 한쪽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풀어가며 과학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생성원리를 기(氣)로써 논리를 펴낸 동양의 '이것'은 신앙인가 과학인가? 우리는 풍수지리를 “자연과학” 또는 “경험과학”이라고 주장 합니다.
“풍수”라는 것은 옛날 그대로 있는데 왜 오늘에 와서 그것을 미신처럼 받아 들이는지풍수를 대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가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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