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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생활]억울한 일과 공정한 미국

Los Angeles

2002.02.0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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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도움을 호소해오는 한인의 전화가 오늘도 어김없이 남겨있다.

아태법률센터 민권변호사로 수많은 한인들과 만나고 전화통화를 하지만 자신의 법률문제를 예기할 때 ‘억울’이나 ‘부당’이라는 단어를 섞어 얘기하는 한인들을 접할 때면 내 자신이 왠지 난감하고 당황스러워진다. 안된 예기지만 ‘억울’이나 ‘부당’이란 말이 들어가는 법률 문제치고 그들의 억울함이 법적으로 해결되거나 구제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아서일까.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서비스는 고작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정신적으로 위로를 해주는 정도. 그래도 억울한 일을 그나마 접수할 수 있는 관련 정부기관의 전화번호로라도 찾아서 안내해 주면 뭔가 큰 일을 해줬다는 느낌이 든다.

‘억울’ 법적 해결 희박

이들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세상에는 참 억울하고 부당한 일도 많다는 것을 느껴보게 되지만 한편으론 법이란 것이 모든 이들의 입맛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인들의 문제에 맞춤복처럼 딱 맞춰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법을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할아버지께서 센터를 찾아오셨다. 서울에서 갓 온 아주머니와 전기( )가 통하셔서 자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셨던 것. 막상 결혼을 하고 영주권을 얻어주니 이 아주머니는 집을 나가셨다나. 같이 살 때 이 아주머니가 학대까지 했다며 사기 결혼을 당한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셨다. 과연 이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한인들의 법률 문제를 들어보면 어떨 땐 어처구니없는 일이 허다하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 매니저의 횡포를 고발해왔다. 심심하면 임대인들에게 육두문자를 써 대며 임대인들을 윽박지르고 못살게 군다는 한인매니저. 이 여성은 툭하면 “혼자 아이 데리고 사는 주제”라며 언어 폭력을 써대는 매니저를 법적으로 혼내주고 싶단다.변호사의 대답은 간단하다. 아파트 주인에게 알리든지 매니저가 폭력을 쓰면 경찰에 신고하든지 정 못살겠으면 이사하는 것이었다. 한심하지만 맞는 말이다.

결국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개인변호사를 고용해 민사상으로 상대방을 법정에 끌어내 혼을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어려운 일이다. 시간당 200-300달러씩 드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느니 당하고 마는게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결과도 보장할 수 없다.

계약을 잘못 맺어 아메리칸 드림이 산산조각이 난 한 한인 중년 남성의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매상을 턱없이 속인 사업체 에이전트에게 속아 깡통 뿐인 업소를 십수년간 일해 모은 돈 다 털어 인수한 이 남성은 이 에이전트가 속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변호사(한인이 아님)가 변호사 비용을 더 낼 때까진 일을 못한다며 손을 들었다. 이 남성은 “자살하고 싶다”며 한인남성의 금기사항인 울음까지 터뜨렸다. 상인간에 일어난 계약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내 소비자 기관이나 경찰에 고발할 수 도 없다. 결국 법률상담이 인생상담으로 이어졌다.

도덕, 심사숙고가 해답

강자 측의 힘의 남용과 강자에 의한 상호 간 맺어진 신뢰 파괴가 이러한 억울한 일들을 불러오고 있다고 본다. 굳이 억울한 일을 줄여나가는 해결책을 생각해보자면 강자는 도덕과 양심에 따른 행동을, 약자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는 조심성이 요구된다고나 할까. 법으로 해결하기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한 한인들이 자신들이 구제될 수 있는 길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이런 말을 던진다. “미국은 그래도 정의가 살아있고 공정한 나라라고 믿었는데.” 한마디로 미국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이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미국은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일 뿐 절대적일 수 없다. 미국도 결국엔 강자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나라고 강자에 의한 힘의 남용과 신뢰 파괴가 존재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강자들이 질서를 지키려는 자세가 더 강하고 이를 어길 경우 제어 장치가 상대적으로 더 잘 돼있을 뿐이다.

요즘 한창 떠들썩하는 엔론스캔들을 들여다보면 미국도 결코 강자가 양심과 도덕만을 준수하지는 않는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한인들이 푸념하듯 미국도 별 수 없는 강자위주의 불공정한 사회인지 엔론스캔들의 처리과정을 통해 해답을 얻어보고 싶다.

김윤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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