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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트레이딩 황원균 사장, "지름길은 없다"

Washington DC

2002.02.08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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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길은 없다.”

 ‘일찍 온 사람은 다들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그런 조급한 마음에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이민 후배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자 하는 비즈니스맨이 있다. “지름길만 찾아다니다 보면 그 끝이 낭떠러지가 될 수도 있다.”

 플로리다 마켓에서 동양식품 도매업체 원트레이딩과 주류 수입도매업체 영원트레이딩을 경영하는 황원균 대표(47). 플로리다 마켓의 도매상들 가운데 비교적 연배가 낮은 편에 속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그가 이제껏 걸어온 상도(商道)는 지름길도, 탄탄대로도 아니다. 한발한발 또박또박 내딛어온, 그저 정도(正道)일 따름이다.

 황원균씨가 고국을 떠난 건 17년 전인 1985년. 나전모방에서 직장인으로 일하던 중 무역업을 하던 큰형을 도와 아프리카의 리베리아에 일광무역 지사로 나왔다. 한국의 북어를 현지에 내다파는 임무였으니 식품과는 첫 인연이다. (리베리아 사람들도 동태 말린 북어를 좋아하는데 노르웨이에서 들여오던 동태가 끊겨 우리 동해바다 명태가 그 자리를 채웠다고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북어 장사에 더해 추진했던 빨래비누 공장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아프리카 경기는 코트라를 위시해서 한국기업들이 줄지어 철수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이듬해인 1986년 초 필라델피아에 살던 형 친구가 중국 무역에 나서면서 친구동생인 그를 불렀고, 잠시 필라 생활을 거쳐 이번에는 친구의 권유로 이곳 워싱턴에 왔다.

 메릴랜드 콜럼비아에 있는 동양식품 도매상에서 3년간 일한 뒤 동양식품 소매점으로 독립했다. 당시 한인 상인들이 꽤 있던 PG 카운티의 슈틀랜드에 차린 ‘오리엔탈 마트’에서 그는 소비자의 취향, 가격 민감도 등 많은 것을 배웠다. 또 일본 식품에도 정통하게 됐다. 이 리테일 경험이 뒷날 큰 힘이 됐다.

 1992년 플로리다 마켓 도매상가에 진출했다. “뭔가 승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원트레이딩이라는 상호로 그가 손댄 품목은 당연히 동양식품. 그로서리, 수퍼, 캐리아웃을 주고객으로 출발했다. 물건 떼가는 소매상의 입장을 잘 아는 장점을 살려 그는 이내 주위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가지수로 따져 취급품목이 2천, 3천을 헤아릴 정도로 사업범위가 넓어졌다.

 일본계, 중국계 단일품목 수입업자들에게서 납품을 받는 한편 한국으로부터의 직수입 비중 또한 높다. 특히 농협무역으로부터는 미 동중부 지역총판을 받아 미 전국 5대 에이전트에 들어간다. 본국의 농협무역은 전국 단위농협조합들의 수출을 총괄하는 농협중앙회 산하기관이다.

 그동안 동양식품의 시장판도가 많이 바뀌어 식당과의 거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주목할 대목은 일본음식이다. 스시 캐리아웃이 계속 늘어나고, 레스토랑도 시내 사무실 상권에서 외곽 주거지 상권까지 확산되는 중이다.

 이제 일본식당은 일본 스시맨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일본 식당의 80% 가량은 한인이 운영하고 버마사람들도 뛰어든다. 곳곳에 없는 곳이 없는 중국식당은 속속 스시를 메뉴에 추가하며 큰 고객군을 형성하고 있다.
 
 - 중국계 동양식품 도매상이 많이 늘어 중국식당을 상대로 한 경쟁이 쉽지 않을텐데?

 “라스트 네임(黃) 덕을 보지요.(웃음)”

 중국식당은 한 줄기에 줄줄이 따라오는 고구마 캐기와도 같다. 좋은 거래선이라고 믿음이 가면 서슴없이 친구며 가족을 연결해 준다고 한다.

 이렇게 식당 거래선이 늘면서 판매형태도 배달 위주로 전환되고 있다. 한편 배달주문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과 품질에서 수요 공급자 간의 신뢰가 쌓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시’와 함께 미국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일본말 가운데 ‘사케’가 있다. 황 사장이 의욕을 불사르는 또다른 주력업종이 바로 주류 수입도매업이다.

 술은 도매업체, 수입업체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아이템. 그러나 술에 손을 댄다는 것은 결코 간단치가 않은 일이다. 알 카포네가 설치던 금주령(Prohibition) 시대의 배경까지 더듬지 않더라도 주류의 수입허가를 결정하는 곳이 화기(총)를 관장하는 연방기관 ATF라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에서는 술이 얼마나 엄격한 관리대상이고 또 아무나 취급할 수 없다는 사정을 알 수 있다.

 1년여의 준비 끝에 황 사장은 1997년 ATF로부터 리쿼&와인 수입허가를 따냈다. 이를 위해 영원트레이딩이라는 별도의 회사를 차렸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DC에서 도매를 하기 위해 각 주정부로부터 주류도매 허가도 받았다.

 영원트레이딩은 농협의 미주 총판으로 술시장에 진출했다. 기자가 황 사장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안동소주 워싱턴 진출 홍보 행사장에서였다. 그때 같이 들여온 베로와인, 이로주까지 세 가지 술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황 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술이름은 끝없이 이어지는 아라비안 나이트였다.

 농협 술에 더해 두산을 통해 들어오는 산(山)소주, 그린소주, 청하, 이동막걸리, 백화수복, OB맥주, 카스맥주, 설중매에다 요즘 잘 나가는 금산인삼주까지 있다. 술을 못하기는 하지만 한국비디오에 나오는 광고를 통해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법했다. 그런데… 정종으로 이어진다.

 640년 전통의 일본 정종 ‘하쿠시카’를 들어봤는가. 정종류로 또 ‘오제키’가 있고 일본 각지 스물두 군데 집안에서 가전되어 빚는 ‘지사케’에다 매실주 ‘초야’가 있다.

 인도 맥주로 ‘골든 이글 비어’ ‘2000 & 5000’, 중국산 ‘파고다 샤요싱’, 그리고 칠레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서는 와인을 들여온다.

 이렇게 5년 사이에 취급하는 술의 종류가 1백개 이상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미국 술시장 전체로 보면 아직 그 비중이 미미한 수준이라는 황 사장의 설명이다.

 이제는 메인 스트림이다. 거대한 미국 술시장에 파고 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말을 꾸며 본다면, 주류(酒類)로 주류(主流)에 진출한다!

 아이템이 갖춰진 만큼 PX 커미서리도 두들겨 보고 미국 레스토랑들도 본격적으로 뚫고 싶다. 이미 섄틸리에 있는 고급식품점 서튼 플레이스 구메이와는 거래를 텄고 값이 비싼 초야 매실주는 주로 미국 고급식당에서 나가고 있기도 하다.

 주류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물어봤다. ‘법대로’가 그의 대답이다.

 “술은 내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정부 관리하의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친 김에 묵은 질문을 던져봤다. “식당에선 쐬주가 너무 비싸다고들 하던데.” 리쿼를 직접 유통시키는 주정부, 카운티 정부에게 있어 술이 큰 수입원이라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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