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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 세친구 방문덕에 생각해본 도시생활의 한계

Los Angeles

2013.04.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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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골집은 역사가 족히 500년 이상인 아주 오래된 마을의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동네는 충청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간 초입에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우리 집까지 들어 오려면, 동네 어귀에서부터 산 쪽으로 30여 호 가까이를 지나쳐야 한다.

어귀부터 우리 집까지의 거리는 1km쯤이다. 마을 입구에서 우리 집에 이르기까지는 지은 지 수십 년 이상 된 시골 집들뿐만이 아니라, 논과 밭은 물론 소를 기르는 축사도 두어 군데 거치게 돼 있다.

최근 친구 셋이 우리 집을 잇달아 다녀갔다. 세 사람은 그러나 한꺼번에 방문한 게 아니다. 서로 다른 날짜를 택해 나를 찾았다. 셋은 모두 나와는 친구 관계지만 서로간에는 일면식도 없다.

세 사람은 각각 공기업 간부, 의사, 미국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모두 비슷한 동기에서 나를 찾았다. 시골에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들은 매일 흙을 손에 묻혀가며 사는 나를 얼마간쯤은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들에게서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세 사람 모두 어른이 될 때까지 농사를 짓는 등의 시골 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도, 흥미롭게도 시골 생활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종종 어머니와 할머니의 농사를 거들었던 나는 시골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어느 정도 아는 상태에서 현재의 시골 마을을 삶터로 결정했다. 요컨대, 친구 셋은 나와는 '출신 성분'이 다른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장차 시골 생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들이 원하는 시골 생활은 물론 나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은퇴 후 전원 생활, 혹은 별장 생활의 터전으로써 시골을 고려하고 있는 점이 그랬다. 나처럼 생계 문제까지도 시골에서 해결하려 하는, 즉 자급자족을 목표로 한 시골 생활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연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시골에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나나, 휴식과 안식을 얻으려는 친구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친구들이었지만, 동네 어귀에서 우리 집까지 올라오면서 봐야 했던 풍광들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던 듯 하다. 번듯한 아파트와는 달리 쓰러져갈 듯 낡은 동네의 시골 집들이며, 을씨년스러운 우사 등을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바라보는 듯 했다.

한마디로 친구 셋은 시골의 가치를 그 나름대로 인정해주는 편들이었다. 물론 시골을 대하는 이들 세 사람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의 가치관이 이전 세대들과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나로서는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방문한 친구 셋 말고도 조만간 또 두세 명의 친구가 나를 찾을 것 같다. 앞으로 방문 예정인 친구들도 앞의 세 친구와 비슷한 면면들을 갖고 있다. 도시에서 나름대로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이 그렇고, 흙을 만지며 자라지 않았다는 성장 배경도 마찬가지로 닮았다.

또 내가 시골에서 사는 모습이 무엇보다 궁금해서 나를 찾으려 하는 점도 앞서 나를 찾은 친구들과 똑같다. 지금까지 나를 찾은 친구들이나 앞으로 찾을 예정인 친구들은 모두 수십 층짜리 고층아파트로 대변되는 수직 사회인 도시의 한계를 그들 나름대로 짚어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나 시골 모두 앞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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