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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를 바꾼 30인] 종교개혁의 아버지 마틴 루터

Washington DC

2002.03.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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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면죄부 아닌 믿음을 통해”
 천년 넘게 지탱되어 온 유럽 기독교의 역사는 종교개혁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루터(1483-1546) 한 사람의 생각과 결단때문에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했다.루터는 중세 사람들의 세계관을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던 교회의 권위에 정면으로 대항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성도들이 부름받은 제사장이라는 ‘만인 제사장설’과 함께 기독교인의 최종 권위는 오직 성경임을 주장함으로써 개신교 신학 (Protestant Theology)의 기본 골격을 완성했다.

 루터 자신도 종교개혁 이전에는 중세의 인물이었다. 그가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도 다분히 중세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부친의 의도대로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하던 21살의 청년 루터는 우연히 큰 폭풍우 속에서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혀 “성 안나여, 나를 구해주시면 수도사로서 평생을 살겠습니다”라고 서원했고 그 때의 기도 때문에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가 되었다고 한다. 부친의 수호성자였던 성 안나 (St. Anna)가 성모 마리아 어머니의 이름인 것을 고려할 때, 루터의 소명은 지극히 중세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종교개혁의 시초라고 불리는 1517년 10월 31일의 사건, 즉 면죄부의 남용을 지적한 95개조의 선언문을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붙인 사건도 엄밀한 의미에서 중세 대학과 교회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 많은 학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신학 사조에 대해서 토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루터로 하여금 새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종교개혁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부터 시작됐다. 교회법이 정하는 성례전에 참여하는 길이 중세교회가 요구한 구원의 길이었다면, 이제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기로 개인의 ‘믿음’이라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이같은 신학을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불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물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517년 95개조 선언문 발표 이후 루터는 수 차례에 걸쳐 가톨릭교회 조사단과 신학자들에게 심문을 받거나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결국 1520년, 그의 나이 36세때 교황 레오 10세의 문서 (Exsurge Domine)를 공개적으로 불살라 버림으로써 루터는 로마교황청과 완전 결별했고 이듬해 공식적인 파문을 받게 된다. 종교문제뿐 아니라 로마의 정치·경제적 영향을 경계하던 독일의 제후들이 파문이라는 극단적 처벌을 받은 루터를 정치적으로 보호하면서, 종교개혁은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서서히 확산되어갔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485년이 지난 지금 가톨릭과 루터교회가 ‘칭의론에 대한 공동 성명’을 함께 발표하는 등 곳곳에서 신·구교간의 신학적 화해가 시도되고 있다. 일부 보수적 개신교단의 반대도 있었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지하는 교단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공동성명에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가 지난 2000년을 ‘대희년(Great Jubilee)’으로 선포한 교황칙령(Incarnationis Mysterium)에 면죄부(Indulgence) 발행을 포함시키면서 수백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의 계기가 되었던 면죄부 문제는 다시금 신·구교간 화해를 방해하는 신학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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