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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애틀랜타 최초 한인' 윤치호 선생을 생각하며 - 이승남

Atlanta

2013.05.17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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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애틀랜타 한인회장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3년 6월 14일, 애국가의 작사자인 윤치호 선생이 이곳 애틀랜타의 명문대학인 에모리 대학을 졸업했다.

윤치호 선생은 1891년부터 1893년까지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리하여 윤치호 선생은 조지아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윤치호 선생은 또한 애틀랜타 한인 이민자 1호가 되었다.

-애틀랜타 한인이민사 39페이지-

1864년 한국에서 태어난 윤치호 선생은 일찍기 신사유람단의 일행인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활동했고, 감리교 선교사로서 한국 초기 감리교 선교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윤치호 선생은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여름방학이면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애틀랜타 농촌의 교회를 방문해 기금을 모았다. 그런데 그가 쓰다 남은 돈 200달러를 에모리 대학 워렌 캔들러(Warren Candler)에게 "한국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해달라"고 맡겼다. 그것이 감리교 한국 선교의 시초였다. 윤치호 선생은 귀국후 독립협회에 가담했고, 서재필에 이어 독립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필자가 11년전 편집위원장을 맡아 '애틀랜타 한인이민사'를 함께 집필할 때 일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애국가 작곡자를 안익태 선생으로 기재했고, 작사자는 윤치호 선생으로 소개했기에 책에도 그렇게 기록하려 했다. 그런데 한인들 사이에서도 '윤치호 애국가 작사'를 넣을지 논란이 많아 많은 토론을 거친 끝에, 결국 책을 마지막으로 감수하던 중 이를 삭제했다.

그런데 2년전 에모리대를 방문했다가, 운좋게 대학 도서관에 소장중인 윤치호 선생의 일기와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독립신문 1895년 제1권에 "독립문 정초식 순서중 불린 창가 중 '조선가'의 가사가 윤치호 선생의 것"이라고 소개돼 있다. 그리고 필자는 에모리 대 도서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윤치호 선생의 문헌을 발견해 이를 확인했다.

따라서 조국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고 다짐하기 위해 온국민이 부르는 노래인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 선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처럼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의 최초 페이지를 장식하고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 선생이 에모리대를 졸업한지 올해 120주년이다. 이같은 시기에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 선생이라는 사실을 애틀랜타에서 연구해, 한국에도 알리는 것이 애틀랜타 한인들의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윤치호 선생은 에모리대의 한국인 학생 1호는 물론이고, 외국인 유학생 1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에모리 대학은 오는 6월 윤치호 선생 졸업 12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윤치호 선생을 시작으로 에모리대에는 수천명의 한인 유학생들이 졸업했으며, 그중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등 수많은 지도자들도 배출됐다.

현재 LA에는 '한인 이민사 박물관'이 건립돼 운영중이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우리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역사의식을 갖고,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에모리 대학에서 열리는 윤치호 선생 졸업 120주년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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