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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노풍'이 부는 이유 - 이계선

New York

2002.04.3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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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날 없는 한국정치판에 느닷없이 노풍(盧風)이 등장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태산계곡에서 낮잠을 즐기던 용이 기지개를 펴자 풍운이 일고 비가 내리듯, 와룡강 숲 속에 숨어 지내던 무명선비 복룡 제갈량이 슬그머니 숲 속을 나서자 중원 천지에 삼국지 바람이 불 듯 말이다.

돈키호테는 바보 산초같은 측근이라도 있었다지만 노무현씨는 계보도 없고 측근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필마단기로 민주당 불모지 부산을 사수하던 노무현씨가 노풍을 일으키자 한국정치계는 기절초풍을 하고 있다.

7명의 민주당 대선주자중 4명은 일찌감치 추풍낙엽으로 떨어져 나갔다. 음모론 색깔론으로 결사항전을 벌이던 이인제씨는 노풍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후보를 사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세론을 타고 승승장구 하던 이회창씨도 노풍에 밀려 그 인기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노무현씨의 정책특보가 어느 틈에 뉴욕에 와서 동포간담회를 했다고 한다. 바람 좋아하는 뉴욕 동포들이 합세하면 노풍은 뉴욕에서도 태풍으로 불게 틀림없다.

노풍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인제씨와 이회창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청와대에서 불어대는 음모론인가 아니면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거품으로 끝나버릴 허풍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노풍은 단순한 정치 바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음모론으로 만든 정치바람이 아니다. 선거철이면 계절풍처럼 불어오는 정치바람은 더욱 아니다.

노풍은 문화바람이다. 정치문화 바람이다. 조국 근대화를 노리고 한국의 경제, 사회, 군사, 문화, 교육분야를 맹렬하게 몰아 부치던 새바람이 드디어 정치판에 상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경제, 군사,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크게 변하여 근대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치만은 60년대 스타일로 구태의연한 그대로다. 그런데 이번에 노풍을 타고 한국 정치풍토에 새로운 문화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정견을 듣고 있노라면 꼭 한국의 대종가요를 시대별로 듣는 기분이 든다. 이회창씨는 50년대의 유성기판 ‘신라의 달밤’스타일이다. 흘러간 노래만 고집하는 3김식 구시대적 발상이다.

이인제씨의 웅변조 연설은 70년대를 풍미한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노무현씨의 연설은 오디오 시스템을 잘 활용할 줄 아는 FX음악 스타일이다. 목에 힘을 주지도 않고 발라드 풍으로 말한다.

그는 당내기반이 약하여 계보나 측근 국회의원 없기로 유명하다. 운동원들은 탤런트, 교수, 사회운동가, 학생, 직장인들처럼 대개가 젊은 의식을 갖고 있는 인터넷 세대들이다.

노풍은 지금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불고 있는 새바람인 것이다. 나는 노무현 바람을 정치 문화바람으로 보고싶다. 문화가 없는 정치는 권모술수로 부정부패를 낳지만 문화가 있는 정치는 정치의 예술화로 아름다운 민주축제를 만들어 낸다.

청와대의 아들들이 각종 게이트의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정국이 들끓고 있는 것도 권모술수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도 노풍이 불었으면 좋겠다.

일본도 대만도 정치문화에 성공하여 구시대가 물러가 버리고 신선한 젊은 정치를 하고 있다. 50년 한국정치사에 가장 신선한 바람으로 불고 있는 노풍의 끝자리에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처럼 젊은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까.

노풍 이야기를 끝내려는데 갑자기 고향의 어린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구절이 생각난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대추야 떨어져라. 아이야 아이야 주어라.”


이계선 <목사, 기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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