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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구문 예찬

여준영

인터넷으로 새로운 소식을 주로 접하면서 신문을 사서 보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종종 지인 댁에 들를 때면 날 지난 신문을 얻어 오곤 하는데 신문으로서의 기능을 이미 상실한 것들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구문(?)이랄까. 점심 시간에 짬을 내어 이 구문을 읽는 것이 하루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구문을 읽고 있으면 어릴 적 꿈꾸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사건을 반추해 가며 내가 보냈던 시간과 내가 있었던 공간을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실시간의 긴장감은 없지만 차분하게 바라보는 여유가 있다. 과거의 재활용이자 시공(時空)의 되새김질이랄까. 나와는 별 관계 없는 시시콜콜한 일들에 관심을 가져보게 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때론 신문을 제때 얻지 못한 날에는 구문을 한번 더 읽기도 하는데 재탕한 탕약 같은 글이랄까. 일회용으로 버려지기에는 아까운 글 말이다. 따로 오려내어 스크랩을 해 두기도 하는데 참 이상도 하지 다시 들춰지지 않는 게 이 스크랩한 것들이라니.

놓쳐버린 이벤트나 마감일 지난 정보를 대할 때면 신문을 읽지 못한 후회로 허벅지를 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구문에서조차 신문이 주지 못하는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될 줄이야….

나의 구문들은 정치경제 사회 섹션은 온데간데 없고 음식책소식영화 섹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영화 섹션은 단연 구문 중의 신문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연말 15년을 써 오던 브라운관 TV를 버리고 적당한 LCD TV를 사려고 할인점을 들렀다. 내가 사고자 마음먹었던 TV 사이즈는 이미 동이 나 버리고 없었다. 아내에게 '사고 하나 치겠다'고 해놓고 예산의 두배가 넘는 스마트 TV를 사버렸다. 스마트 TV는 인터넷이 되는 그야말로 영리한 TV였다. 구문속에 나온 몇달 전의 영화평을 읽고 그 영화를 인터넷 유료 영화 사이트에서 스마트 TV로 본다. 새로 나온 영화들은 얼마 지나야 올라오지만 철 지난 영화들은 평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니 구문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사무실 책상 한 구석에는 어느 새 구문이 쌓여가고 나의 시간도 함께 쌓여 간다. 이것들은 역사가 되겠지. 한때는 신문을 보고 나서 신문철에다 꿰어 보관해 둔 적이 있었다.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 찾아 보려함이었지만 그것은 단지 신문을 철하는게 아니라 역사를 철하고 싶었고 시간을 모아 두고 싶은 아쉬움의 발현이었으리.

역사란게 뭐 별건가? 학문적 정의는 논외로 하자면 그것은 흘러간 사건의 모임이요 때 지난 소식의 동창회 아닌가. 결국 구문을 읽는 나는 가장 신선한 역사와 호흡하며 사는 셈이다. 역사가 바로 구문일진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 구문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구문(舊聞)은 읽는 지금 신문(新聞)으로 거듭난다. 며칠 전의 구문이 이러할진데 백년 이백년전의 구문(舊文)들은 얼마나 새로울까. 읽는 순간 신문(新文)으로 환생하는 신비를 가지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와 동행하기 위해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과 눈을 가지고 쫓아가기에도 모자랄 마당에 구문을 읽는 한심한 처사가 어디 있나고 말하는 이도 있으리라. 구문을 읽어보라. 미래가 보일 것이다. 신문이 주지 못하는 깊이를 느낄 것이다. 삶을 사는 지혜가 떠오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억지 논리로 구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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