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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상상서 시작된 '무시무시한 공포 세상'

Los Angeles

2013.06.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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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 관한 갈등 장면 몰입도 최고
공포·스릴감 어느 호러 영화 보다도 강렬
퍼지(The Purge)
감독: 제임스 드모나코
출연: 에단 호크, 레나 히디 등
장르: 스릴러
등급: R


때로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고 박진감 넘치는 영화로 완성된다. 영화 '퍼지(The Purge)'가 좋은 예다.

'퍼지'는 지극히 간단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매년 딱 12시간, 세상이 무법천지가 된다면'이라는 가정이 그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2년의 미국. 실업률과 범죄율은 0에 가까운 태평성대다. 하지만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광기의 분출구를 제도화해놓았다. 그게 바로 '퍼지'다. 1년에 딱 12시간씩 그 어떤 범죄와 불법 행위도 통제하지 않고 묵인하는 제도를 뜻한다. 이 시간만큼은 경찰도 군인도 소방관도 모든 사건사고에서 손을 뗀다. 병원마저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하지만 이 12시간 동안 사람들의 내재된 분노와 폭력성이 합법적으로 표출될 수 있기에, 나머지 364일 12시간 세상은 평화롭게 돌아갈 수 있다고 미국인들은 믿는다.

이 '퍼지'제도를 배경으로 깔고, 영화는 부유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제임스 새딘(에단 호크) 가족에게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댄다. 일급 보안장치 세일즈로 큰 돈을 번 새딘 가족은 '퍼지' 발효와 함께 온 집안의 문을 철통같이 걸어잠그고 안전하게 12시간을 보내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닥치면서 집안은 생지옥이 되고 만다.

영화엔 귀신이나 유령같은 존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공포와 스릴감은 어느 호러 영화보다도 강렬하다. 인간에게 내재된 사악함을 전면에 끌어 올려 보여주는 만큼, 가상의 설정임에도 모든게 충분히 '있을법한' 일로 느껴져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퍼지'를 통해 돈을 번 제임스가 다시 그 덫에 걸려 자신과 그 가족까지 위험에 몰아넣게 된다는 설정 또한 역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집안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광기어린 사람들과의 육탄전은 좀비나 드라큘라와의 격전보다 훨씬 박진감 넘치고 생생하다. 아직은 '퍼지'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와 그 순기능만을 바라보려 하는 어른의 사고가 충돌을 이루는 부분도 흥미롭다. 생각지도 못했던 '퍼지'의 피해자가 될 상황 앞에서 인간의 도리를 버린 채 가족을 지킬 것인지, 위험을 감수한 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등장하는 부분도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는 80분 남짓으로 아주 길지 않지만, 워낙 긴장의 강도가 높아 작품을 보고 난 후 녹초가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아예 관객들을 놀래키려고 작정을 하고 장난을 치는 장면들도 간간이 등장해 심장을 덜컹덜컹 내려앉게 한다. 더위를 날려버릴만한 짧고 굵은 스릴러를 원하거나, 귀신은 싫지만 공포영화는 보고 싶다하는 관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영화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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