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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허공에 이는 바람

강정실

어렵사리 잠들면 계속해서 꿈을 꾼다.

시애틀을 떠난 지, 그곳에 십수삼 년 동안 개인적인 일로 몇 차례 들렀다. 그러나 내가 정붙이고 살았던 곳에는 가보질 못했으니 그동안 형체조차 아련했다. 이번에는 볼일을 본 후, 잠시 시간 내어 찾아다니면서 카메라로 하나씩 촬영했다.

그게 연유가 됐을까. 잠들면 처음 미국에 도착하고 시작한 조그마한 모텔과 주택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가 살가운 빛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중·고등학교 학생인 아들딸과 함께 시택공항(Sea-tac Airport)에 내려 캐나다 영주권을 들고 입국 신고하러 밴쿠버로 가던 일, 눈이 엄청 쌓인 레니어 산장에서 눈싸움하던 일, 장모님과 한국에서 데리고 온 강아지 다솜이, 남동생과 그의 가족 얼굴까지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대책 없이 펼쳐진다.

아내와 딸이 손을 내민다. 그 손을 잡고 눈 떴는데 주위엔 아무도 없다. 새벽 3시가 넘었다. 달아난 잠은 꽁지가 안 보여 TV를 켰다. 가수 고 김광석씨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애잔하게 부르고 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어느 무대의 동영상이었다. 얼추 20년 전에 들었던 노래라 기억된다. 그와 인연이 있었던 몇 분의 가수도 그의 히트곡을 한 곡씩 부르며 추모해 준다.

TV를 끄고 다시 잠을 청한다. 천장에 조금 전 보았던 무대가 펼쳐진다. 노래하는 음성과 얼굴이 점점 크게 클로즈업된다. 의자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를 불러대는 가수는 다름 아닌 내가 아닌가. 눈가에는 주름살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검은 테의 동그란 안경까지 끼고 있다. 삶은 허리가 휘도록 무거운 등짐 같은 추억을 만들어 내며 아프게 한다. 그 아픔은 육신과 정신을 쉽게 지치게 한다. 나는 입 다물고 두 발을 땅속 깊이 박고 흔들리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헤일 수 없는 많은 날의 찌꺼기가 속절없이 기웃대고 그 아픔은 고스란히 꿈에서까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대부분 이순(耳順)이 되면 행동거지나 생각하는 폭도 둔화하기 마련이고 육체의 기능까지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허무감과 삶에 대해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것에 대비하라는 뜻, 은연중 용기를 갖게 하려고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나온 듯싶다. 그러나 그 말뜻을 액면 그대로 새길 일은 아닌 것 같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억의 가시가 불쑥불쑥 상처를 입히고, 잠들면 연속극처럼 매일 자신의 과거로 행보하기 때문이다.

가시는 무엇일까. 세상살이에 모진 일을 당했을 때, 지친 생활을 혼자 삭이지 못하고 가족에게 거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입혔을 때라 싶다. 이때 상처로 생겨난 가시가 죽지 않고 조금씩 커가는 것을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잊혔던 가시에 찔려 되살아난 기억의 아픔은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정신을 지치게 하며, 부초처럼 내 주변에 떠다닌다.

새벽녘을 기다리면서 이생과 전생을 생각해 본다. 인생! 지난 세월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인생의 시곗바늘은 늦은 오후를 가리키고 있다. 세월이 덧없다. 고향 함지골엔 여여한 마음을 가진 친구가 아직도 있을까. 반월성 넘어 사자수를 건너면 원효 스님이 요석 공주와 설총이 함께 뒤웅박을 목탁 삼아 두드리고 있는 도솔천에 다다를까. 꿈많던 청춘은 지고, 극락정토에 있다는 휘파람새의 노랫가락을 이해하고 있는가. 해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노래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간밤의 꿈 때문이었을까. 문밖을 나서려는데 새삼스레 발을 붙잡는 게 있다. 컴퓨터를 켜고 고 김광석의 노랫말을 찾아 내용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노랫말은 내 삶의 길목마다 고스란히 얽히고 섞여 녹아 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중략/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중략/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중략/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바닷바람은 아버지가 슬리퍼로 빈 마루바닥을 걸을 때처럼 사스락대며 지나간다. 이런 소리는 하루에도 시도때도없이 환청이 되어 쇠뭉치에 눌리는 듯 나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리곤 이 아픔은 비수가 되어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허공에 이는 바람은 지친 가슴을 삭여줄까. 맘 붙일 곳 없는 나는, 유년시절에 즐겨 찾았던 고향의 바닷가와 산길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거름 바다물결이 허허롭다. 오늘 밤에는 또 무슨 꿈을 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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