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열 기자의 취재 그 후] '게릴라식 청빙'은 사라져야 한다
요즘 교회들의 청빙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언제부턴가 교계에서 만연되고 있는 '게릴라식 청빙'은 당혹감을 넘어 수많은 교인들을 실족시켜 왔다. 갑자기 청빙 소식을 맞닥뜨린 교회는 충격에 휩싸이거나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최근 베델한인교회가 김한요 목사(세리토스장로교회)를 담임으로 내정했다는 소식은 교계를 들썩이게 하며 다시 한번 오늘날 청빙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청빙은 교계 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돼 왔다. 이는 청빙을 두고 '내 교회' 또는 '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 발상이 뿌리다.
청빙을 제의한 교회나, 청빙을 받은 목사는 교회적 관점의 시각을 상실해선 안된다. 청빙은 이웃 기업체의 인사를 스카우트하는 사회적 행위가 아니다.
청빙이란 단어 자체가 '부탁하여 부른다'의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베델한인교회는 교회와 교회 차원에서 김한요 목사가 속한 공동체에 정식으로 부탁을 했어야 맞다.
김 목사 역시 교회를 한 몸으로 생각했다면 청빙 제의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려서 교회의 뜻을 묻고 함께 결정하는 것이 순서였다. 교회적 관점의 청빙이 배제된 결과 때문에 아무 것도 몰랐던 교인들만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 했다.
대부분 게릴라식 청빙은 물밑에서 당사자 간의 합의를 끝내놓고 그제야 외형상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다.
베델한인교회도 청빙 소식을 외부에 알리기 전부터 이미 김 목사를 심령 대부흥회 집회(7일~9일) 강사로 내세우고, 청빙의 마무리 단계인 재직회(12일) 일정까지 공지한 상태였다. 정작 세리토스장로교회 교인들만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지난 2일 김 목사의 일방적인 사임 발표를 눈물로 들어야 했다.
게다가 게릴라식 청빙은 목회자들의 '상향 이동'만 부추기는 폐해를 낳는다. 본인이 시무하던 곳보다 작은 교회로 청빙을 받아 옮긴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청빙은 규모가 큰 교회가, 그보다 작은 교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청빙은 본인에게 기회다.
이는 상승을 위한 심각한 자기 합리화를 불러온다. 마치 목회자의 실력과 교회 크기가 비례하는 듯한 착시현상과 무의식적으로 교회와 교회를 차등화시키는 위험한 오류를 범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여러 목회자는 청빙시 신의 뜻을 내세웠는데, 신의 인도는 매번 '상향 이동'으로만 점철되는가.
결국 이 모든 결과로 인한 아픔과 상처는 교인들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이는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종교적 폭력에 가까운 게릴라식 청빙은 사라져야 한다.
성숙하고 건강한 청빙 사례를 보고 싶다. 그런 교회가 있다면 기꺼이 펜을 들어 알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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