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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푸는 심리]스탈린의 무시무시한 편집증

Los Angeles

2002.06.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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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정신과 전문의, 오클랜드>
환자가 너무 유명한 인사라 정상적인 의사-환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그 결과로 환자는 불이익을 얻게 되기 쉽다.

스탈린의 경우는 공산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면서 인민의 생사 여탈을 검어 쥐었던 최고의 VIP였다는 점 말고도 심한 편집증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다.

그 증상으로 의사까지 포함해 누구도 믿지 못하는 병적 불신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이 편집증은 스탈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러시아 민족의 독특한 성격의 발현일 뿐이며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비밀, 감시, 통제 같은 공산주의 특성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로 농경 민족으로 구성되었던 러시아는 수세기에 걸쳐 훈 족, 몽골, 코사크, 독일 같은 주변 유목 민족의 침략에 의해 끊임없이 시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인들은 외부인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 적대적인 국민성을 갖게 되었다.

한편 러시아의 지배층은 역사적으로 인민을 계속 탄압했다. 이반 뇌제(雷帝)때부터 심복들을 시켜 인민을 감시하고 억압하려는 비밀 경찰제도를 유지해 왔다. 인민들은 억압자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종을 택했다. 이것을 잘 갈파한 통치자들은 차르 시절부터 인민을 계속 억누르고 착취하는 것이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민족의 독특한 성격

일찍이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점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러시아 대중들이란 본심이 악하고 나태하기 때문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타락적인 신념을 지녔다. 그래서 그들은 가혹한 탄압이나 살인까지도 정당화시켰다.”

사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과 공포를 사용한 것은 스탈린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일찍이 트로츠키는 ‘테러리즘을 위한 변명’에서 적의 계급의식을 분쇄하기 위한 폭력의 사용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 후 레닌은 이것을 자신의 이론에 도입하여 계급투쟁에서 조직적으로 폭력을 사용토록 구체화시켰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 해도 스탈린의 편집은 정신병에 속할 만큼 그 정도가 심했다.

1932년 그는 일생을 통해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이었던 부인 네데즈다를 화가 치밀어 오르자 즉석에서 사살했다. 또 그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로 있던 가장 절친한 친구를 직접 총을 쏘아 죽였다.

부인을 잃은 후 애인으로 삼았던 리자 카지도바에 대한 집념이 지나쳐 그는 그녀의 약혼자를 강제 수용소에 추방하고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경찰에 명령하여 그녀를 윤간한 다음 감옥에 처넣었는데 그녀는 결국 실종되고 말았다.

아내 사살, 주치의도 처형

그는 정적이었던 트로츠키가 망명해 있던 멕시코에까지 자객을 보내 도끼로 찍어 살해했으며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의 영웅이라고 칭송 받던 작가 맥심 고르키를 목을 눌러 죽였다.

그는 1930년대 자신의 주치의였던 플레트노브 박사가 다른 의사들과 공모하여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죄목으로 처형했다. 의사들의 ‘음모 사건’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1953년에도 수명의 의사가 수상 살해 음모 죄목으로 기소되었다가 그가 죽자 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은 그의 정신 질환은 집권 초기에 이미 그 양상이 밝혀진 적이 한번 있었다. 1927년 당시 저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미하일로비치 벡테레브는 수상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크렘린에 초빙되었다.

그는 수상이 우울증말고도 극심한 공포에 싸여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의사의 양심에 따라 ‘인류의 구세주’이며 ‘러시아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던 수상에게 ‘중증 편집증’이란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크렘린 궁에서 살아 나오지 못했다. 진단을 내린 날 그는 환자 스탈린의 손에 의해 독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환자는 당시 소련에서 가장 유명했던 정신과 의사에 의해 치료를 받을 수 있던 기회를 영영 잃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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