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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박사의 성경 바로 읽기 <5>] 선한 눈과 악한 눈

New York

2002.06.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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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선한 눈'을 주소서
(마태복음 6:22-23)

“몸의 등불은 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순전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다. 그러나 네 눈이 나쁘면 네 온 몸이 어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어떠하겠는가?” (마태복음 6:22∼23).
이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히브리어 숙어 때문이다.
언어마다 나름대로의 숙어내지는 관용어가 있다. 이런 표현들의 요소 하나하나를 문자적 의미 그대로 번역하여 다른 언어로 옮겨 놓을 경우 그 표현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엉뚱한 의미를 얻게 되어 결국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오해까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귀가 가렵다’나 ‘귀가 따갑다’라는 우리말 관용어를 다른 언어로 직역할 경우, 잘못하면 물리적인 통증을 말하는 것으로 와전될 수 있다.
신약 성경이 비록 그리스어로 기록은 되었으나, 그 언어적 배경은 사실 그리스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와 그것의 자매 언어인 ‘아람어’(Aramaic)라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본래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언급되었다. 기록만 그리스어로 전해질뿐이다.
마태복음 6:22∼23 본문 가운데 ‘눈이 나쁘다’나 ‘눈이 순전하다’라는 문구는 그리스어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히브리어상의 숙어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표현에서 ‘순전한 눈’(히브리어로 ‘아인 토바’)은 ‘관대함’을 뜻하고, ‘나쁜 눈’(히브리어로 ‘아인 라아’)은 ‘인색함’을 뜻한다. 이 표현들은 특별히 재물의 사용과 관련이 있다.
먼저 다음의 몇몇 구약 성경 구절들을 통하여 이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잠언 22: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에서 ‘선한 눈을 가진 자’, 다시 말해서 마음이 관대한 사람은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준다’는 말씀을 보게 된다.
‘나쁜 눈’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의 신명기 15:9, 28:54,56에서 ‘인색함’의 의미로 사용된 바 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7년 면제년이 가까웠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신명기 15:9). 여기서 말하는 ‘악한 눈’이란 율법의 제도를 악용하여 가난한 이웃돕기를 거절하는 옹색한 마음을 가리킨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에 대하여 그의 눈이 악하여져서,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그 품의 남편과 그 자녀에 대하여 그녀의 눈이 악하여져서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함이니라”(신명기 28:54-57). 이 구절은 자기 자식을 잡아먹게 되는 극한 상황 속에서는 아무리 유순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가까운 사람과 나누어 먹기는커녕 혼자 욕심내어 먹으려 한다는 것을 적고 있다.
잠언 23:6, 28:22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악한 눈’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눈이 악한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선을 탐하지 말지어다”(23:6). “눈이 악한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28:22).
이 같이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들을 통하여서 우리는 마태복음 6:22∼23의 말씀을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서 관대한 사람은 밝은 삶을, 인색한 사람은 어두운 삶을 살게 된다”라는 다른 표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해석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보다 넓은 문맥을 살펴보자. 마태복음 6:19∼34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소유’와 관련된 가르침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보물을 이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신다(19∼21절). 물질적 소유에 대하여 인색한(다른 말로 ‘나쁜 눈을 가진’) 사람은 바로 어둠 가운데 살면서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두는 이요, 관대히 베풀 줄 아는(다른 말로 ‘좋은 눈을 가진’) 사람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으로서 하늘에 그 보물을 쌓아 두는 것과 같다(22∼23절). ‘온 몸이 밝다’고 하거나 또는 ‘어둡다’고 함은 ‘눈’과 관련된 히브리어 숙어에서만 이런 일종의 말장난이 가능하다.
계속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시고 있다(24절). 물질적 소유에 대하여 ‘나쁜 눈을 가진’ 이, 곧 인색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 등 육체에 필요한 인간의 모든 물질적 소유는 결코 탐욕이나 염려나 추구의 대상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이 추구의 대상임을 가르치신다(25∼34절). 이러한 흐름을 통해서 보더라도 22∼23절의 말씀이 물질적 소유와 관련된 가르침인 것이 분명하다.
주여 ‘선한 눈’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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