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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한·미의 장례문화 차이

허종욱/한동대 교수

미국에서 40여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10여년간 대학교수 생활을 하면서 겪은 문화충격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장례문화다. 지금 한국에서 대부분의 장례는 병원 장례실에서 치러진다. 종합병원 특히 대학병원들은 거대한 장례시설을 갖추고 있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인 1960년대에는 한국 병원에는 장례시설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큰 병원들은 장례동이라는 별도의 건물을 지어 장례사업을 병원의 큰 수익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도 미국처럼 장례를 독립적으로 관장하는 장례사가 20여년 전부터 생겼다. 소정의 교육과정을 끝내고 정부의 면허를 받아 장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장례사 제도도 생겼다. 그런데 미국과 같이 독립장례사 제도가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병원밖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응급차에 의해 큰 병원으로 옮겨지고 병원 장례실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는 분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 소재 대형종합병원 장례동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 장례동 안에는 30여개의 장례실이 있었다. 장례실의 크기는 사용료에 따라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다른 문상객들과 마찬가지로 꽃 한 송이를 영정사진 앞에 놓고 묵념을 하면서 고인의 생애를 회고했다.

장례실을 막 나오는데 어떤 분이 우리 일행을 옆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 안에는 수십명이 몰려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 쪽이 우리 문상객들의 자리입니다. 빨리 드시고 자리를 비워주셔야 합니다. 다른 장례실 사람들이 곧 옵니다." 안내원의 '간청'이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은 반찬을 상 위에 늘어놨다. 잠시 후 해장국 한 그릇씩 가져왔다. 우리는 그 안내원의 주문대로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고 자리를 떴다.

대학 1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5일장을 치렀다. 문상객들은 집 마당에서 밤새도록 먹고 술마시고 노름판을 벌였다. 어떤 때는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장례문화가 지금은 모두 병원 장례실로 옮겨간 것이다.

미국의 장례문화에서 가장 큰 쇼크는 뷰잉(Viewing)이었다. 모든 문상객이 관 속에 누워있는 고인을 접견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뷰잉문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의 생애를 반추해보는 것도 깊은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도 지금은 '가족뷰잉'이라는 장례절차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장례식은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미국 병원에는 장례실이 없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사에 연락해서 시신을 장의사로 옮긴다. 장례절차도 모두 장의사에서 치러지고 교인들의 경우 교회에서 추모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한국병원들은 의료행위가 아닌 장례식을 왜 운용하고 있을까? 병원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부분은 의료부분이 아니고 장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료부분은 국민의료보험이 관여하지만 장례는 보험당국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현금거래를 하기 때문에 많은 이윤을 남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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