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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 칼럼] 오지랖 넓은 민족

 지난번 칼럼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아주 다양하고 흥미로웁다.

 우선 칼럼의 제목부터 문제가 되었다.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이며 편집, 교정, 감수의 역할까지 하는 남편에게 초고를 넘겨 주었더니,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있어? 난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는 것이다. 마주 앉아서 금새 한 말도 듣지 못했다고 우기는 나이가 됐으니까,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저녁에 돌아 온 남편이 “두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두 사람 다 알더라구. 참견 잘 하는 사람한데 흔히 쓰이는 말이라니까 됐어” 하고 검사필(檢査畢) 도장을 찍어주었다.

 철자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었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앞자락이 넓다”는 것과 같은 뜻이고 따라서 ‘오지랖’이 아니라 ‘오지락’이라 써야 맞는다고 아주 그럴싸한 근거까지 제시하는 것이다. 이숭녕 박사 감수 <새 국어 대사전> 에서 확인된 철자법이니 만큼 믿어도 좋을 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서, 표준어 외에 사투리가 많으니까 지방에 따라 약간 틀리게 발음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칼럼의 내용에 관해서는 찬반(贊反)의 이유가 뚜렷하였다. 교민 중에는 식료품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벙어리 냉가슴’ 식으로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있던 그들의 고충을 아주 속이 후련하게 잘 지적해주었다는 평과, 국제화되어 가는 한국 식품점에서 그래도 우리 교민 전체가 주인의식을 발휘해서 몰지각한 쇼핑을 하는 손님들을 교육시켜야 된다는 것이 찬성/동의의 주종을 이루는 것이었다.

 반대까지는 안 하더라도 다분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의견도 있었다. “바꿔 가면 어때? 남들도 다 하는데” 하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남들 바꿔치기 하는 것은 뭐라고 말하지 않지만 난 절대 그런 얌체 짓 안 해!” 하는 분들이 있고, “그럼 나만 찌꺼기 썩은 망고를 사오란 말이에요?” 하고 따지는 분들도 있었다. 바쁘고 복잡한 식료품 가게에서 내 물건만 빨리 사 가지고 나갈 것이지 뭣 때문에 듣기 싫은 소리를 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느냐는 얘기나, 남들은 요것 조것 골라 가는데 나만 왜 어수룩하게 같은 값 내고 찌꺼기를 사느냐는 얘기나, 다 이해가 가는 얘기이다.

 이해는 가지만 수긍도 동의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산 안창호는 25세의 젊은이로 (1902년 무렵)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20명 남짓한 한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지저분한 집 마당을 비로 쓸고 화분을 놓고 꽃씨를 뿌리며, 창문에는 커튼을 만들어 달고 주방과 변소까지 깨끗이 청소한다. 도산을 의심하여 거절하던 동포들은 그가 아무런 사심도 없이 동포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 점점 믿고 환영한다. 주변이 깨끗하게 변화함에 따라 한인들의 옷차림과 생활태도도 변한다. 큰소리로 떠들며 얘기하는 것을 삼가고 속옷 바람으로 밖에 나오지를 않는다. 한인들에게 방을 빌려주던 미국인은 훌륭한 지도자가 없이는 이런 변화가 불가능함을 알고 그들을 1년간 지도했다는 지도자를 만나자고 한다. 젊은 도산을 만나 그의 인품에 감복한 주인은 자기 집에 세든 한국인들의 집세를 일년에 열 한 달치만 받기로 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이 모일 수 있도록 회관을 무료로 제공하게 된다. 얼마 후 도산은 일거리를 찾아 LA (나성)으로 떠나는 동포들과 같이 나성으로 가 과수원에서 일을 한다. 그는 동료들에게, 귤 하나를 따도 정성을 들여서, 마치 자기가 그 과수원의 주인인 듯 일하라고 당부한다. 그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동료들은 도산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귤이 상할세라, 흠이 날세라, 조심하여 귤을 따고 상자에 담는다. 연말이 되자 과수원 사장은 일꾼들을 불러모아놓고 올해 이익이 많이 늘은 것은 한국인 일꾼들이 귤 하나 하나를 주인처럼 정성들여 다룬 결과라고 칭찬한다. 이것은 주요한 편저 <안도산 전서 (安島山 全書)> 에 나오는 일화이다.

 상상의 날개를 펴서 100년 전의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하루 임금 69전을 받고 온종일 중노동을 하는 한인이 되어 보자. 녹초가 되어서 집에 돌아오니 웬 보지도 못한 청년이 마당을 파고 꽃씨를 뿌리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나서, “당신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꽃을 심는거요?” 하고 묻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창호입니다. 우리가 오랜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 대접받으려면 먼저 그만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보여주어야 되겠습니다. 사는 곳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그걸 모르고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쇼? 돈 없고 힘 없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앞으로 청소는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

 “관둬요. 누가 당신더러 청소 해달라고 그랬오? 지저분하던지 냄새가 나던지 내 집 내 맘대로 해놓고 살테니까 내버려둬요. 원 오지랖 넓은 사람도 다 있지!”

 여기쯤에서 상상의 날개를 접자. 도산이 주장한 주인의식 ― 그것은 선의(善意)의 오지랖 넓음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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